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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분황사 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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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이름 = 분황사석정<br />(芬皇寺石井) | 그림 = Korea-Gyeongju-Bunhwangsa Hogukyongbyeoneojeong.JPG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북도]] | 유형 =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문화재자료]] | 번호 = 9 | 지정 = [[1985년]] [[8월 5일]] | 해지 =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14-5번지 | 시대 = | 소유 = | 참고 = | 면적 = | 수량 = 1기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경주시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5|50|28.21|N|129|14|2.14|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31,00090000,37 }} '''경주 분황사 석정'''(慶州 芬皇寺 石井)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사찰내에 마련되어 있는 돌우물이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분황사 사찰내에 마련되어 있는 돌우물이다. 바위틈 사이로 솟아 오르거나 흘러 내리는 물이 잘 고이도록 바위를 움푹하게 판 뒤, 그 위에 다시 돌을 쌓아 시설해 놓은 모습으로, 겉면은 8각을 이루고, 안쪽의 벽은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다.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이 우물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기슭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는 각각 통일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호국룡이 살고 있었다. 원성왕 11년(795) 중국 당나라 사신이 이 용들을 물고기로 변신시켜 잡아가니,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이 사실을 아뢰며 남편을 찾아줄 것을 아뢰었다. 두 여인의 말을 들은 왕은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은 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된 우물로, 조선시대에 와서 불교억압정책에 따라 사찰내의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이 우물에 넣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돌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우수한 것이며, 현재에도 사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31,00090000,37|분황사석정}}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경상북도의 문화유산자료]] [[분류:경주시의 문화유산|분황사 석정]] [[분류:대한민국의 우물]] [[분류:원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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