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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진평동 인동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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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이름 = 인동입석<br />(仁同立石) |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그림크기 = 150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북도]] | 유형 =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01호 ~ 제200호)#제101호 ~ 제200호|문화재자료]] | 번호 = 184 | 지정 = [[1987년]] [[5월 13일]] | 해지 = |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627-4번지 | 시대 = | 소유 = | 참고 = | 면적 = 322m<sup>2</sup> | 수량 = 2기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구미 진평동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6|6|17|N|128|25|4|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31,01840000,37 }} {{문화재 정보 | 이름 = 인동입석<br />(仁同立石)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북도]] | 유형 =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기념물]] | 번호 = 30 | 지정 = [[1980년]] [[6월 17일]] | 해지 = [[1987년]] [[5월 13일]] | 문화재청 = 23,00300000,37 }} '''인동입석'''(仁同立石)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입석이다.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입석은 바위를 길게 다듬어 세워두는 것으로, 선돌이라고 하며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일종이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 묘의 영역을 나타내었으며,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를 표시하도록 하였고, 토착신앙과 합쳐져 장수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입석은 인동 지역에 관아가 설치될 무렵에 고을의 풍수리지에 이롭게 하고, 도둑을 잡기 위해 세워둔 것으로 3기 중 2기만 남아있어 ‘도둑을 잡는 바위’또는 ‘출포암(出捕岩)’이라 불린다. 앞에서 보아 오른쪽의 큰돌은 앞면에 ‘괘혁암’이라 새기고, 뒷면에는 ‘인동수구석(仁同水口石)’, 다른 한면에는 그 사연을 기록하였다. 괘혁암은 짚신을 걸어두었던 바위라는 뜻으로, 짚신 한짝도 관아의 것이므로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인동 현감 이등림 선생의 청백함을 기리고 있다. 조선 선조 때 고을 사람들이 이 명칭을 새겨두었으며, 350여년이 지난 뒤에 글을 새겨놓았다. 옆에 있는 것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이 ‘대정기념비(大正紀念碑)’라 새긴 것을, 광복 후 ‘대한민국건국기념 ’이라 고쳐 새긴 것이다. 원래는 진평고 앞 삼거리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좀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31,01840000,37|인동입석}}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경상북도의 문화유산자료]] [[분류:구미시의 문화유산|진평동 인동입석]] [[분류:한국의 선돌]] [[분류:해제된 경상북도의 기념물]]
구미 진평동 인동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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