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요즘 화제
임의의 문서로
sitesupport
사용자 모임
사랑방
사용자 모임
관리 요청
편집 안내
소개
도움말
정책과 지침
질문방
한울위키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김삼도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김삼도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일반 사용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김삼도'''(金三道, [[1907년]] ~ ?)는 [[일제강점기]]의 [[불교]] [[승려]]이다. [[법명]]은 '''우보'''(牛步)이며, 우영(宇英)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 생애 == [[경상남도]] [[양산시|양산]] 출생으로, [[경성부]]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산 [[통도사]]에서 종무소 사무원으로 근무했다. [[1930년]] 종교 연극인 포교극을 공연할 때 배우로 출연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36년]] 제6회 졸업생으로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했다. [[도쿄]]의 [[도요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고, 유학 기간 동안 조선불교도쿄유학생회에서 활동했다. [[1939년]] 도요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통도사 불교전수학교 교원이 되었고, 경남3본산종무협회 전무이사에 올랐다. [[1940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 기관지 《불교》의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되었는데, [[중일 전쟁]] 전시 체제 하에서 이 잡지는 급격히 친일화하였다. 김삼도가 처음 편집한 《불교》 신20집 속표지에는 〈[[황국신민의 서사]]〉가 [[일본어]]로 실려있고, 권두언은 직접 집필한 〈황기 2600년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의 친일 논설이다. 같은 해 [[창씨개명]] 정책이 실시될 때에도 〈'씨' 제도 창설의 문답〉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불교]] 승려와 신도들에게 창씨개명 제도를 안내했다. 이 글에서는 창씨개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941년]] [[조계종]] 종단이 [[조선총독부]]의 조종으로 설립된 후 불교사 편집주임으로 발령받았다가 그해 말에 통도사로 돌아갔다. 김삼도가 《불교》를 담당하고 있던 만 2년간 기명 친일 시사문은 위의 두 편 외에 〈총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취하야〉까지 총 3편이 확인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경남교무원 교무부장에 취임한 것을 끝으로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 == 같이 보기 == * [[통도사]]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임혜봉 |제목=친일 승려 108인 |날짜=2005-03-01 |출판사=청년사 |출판위치=서울 |ISBN=978-89-7278-384-8 |장=김삼도 : 불교를 총후보국지로 편집한 승려 |페이지=398~406쪽 }} <!-- 중앙불교전문학교 -->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907년 출생]] [[분류:몰년 미상]] [[분류:일제강점기의 승려]] [[분류:일제강점기의 연극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승려]]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도요 대학 동문]] [[분류:동국대학교 동문]] [[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분류:양산시 출신]]
김삼도
문서로 돌아갑니다.
검색
검색
김삼도 문서 원본 보기
새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