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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순 (대한제국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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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이름 = 김재순 |원어명 = 金在珣 |그림 = |그림설명 = |본명 = 김재순 |로마자 표기 = |출생일 = ? |출생지 = 경기도 과천군 군내면 |사망일 = ? |사망지 = ? |국적 = 대한제국 |학력 = 사부학당 |경력 = 규장각검서관, 오위부사과, 자인 현감, 비서원승, 시종원 시종, 평리원 판사, 내장원경, 통신원 회판, 통신원 총판, 신궁봉경회 회장, 신궁경의회 회장 |직업 = 문신, 정치인, 법관 |병역 = |활동기간 = 1871년 ~ 1913년 |소속 = 신궁봉경회, 신궁경의회 |종교 = ? |배우자 = 한산 이씨 |상훈 = |웹사이트 = |서명 = }} '''김재순'''(金在珣, ? ~ ?)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한제국]]의 문신, 정치인, 법관이었다. [[대한제국]] 말기에 [[신궁봉경회]]와 [[신궁경의회]] 회장을 지낸 인물로, 본적은 [[경기도]] [[과천군]] 군내면이다. 본관은 [[금산 김씨|금산]](金山)이다. [[1871년]] [[7월]] [[취재]]로 관직에 올라 [[1900년]] [[비서원승]], [[1904년]] [[시종원]] 시종과 [[내장원|내장원경]], [[평리원]] 판사를 지낸 대한제국의 관료였다. [[한일 합방]] 직전 사기혐의로 피소당하기도 했다. [[1913년]]에는 [[독립의군부]]에 모금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일본 정계에 끈을 갖고 있는 실력자였다고 사기를 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서재필]], [[갑신정변]] 때 사형당한 [[서재창]]과는 사돈간으로, 이들의 생가 형 [[서재춘]]의 손자 [[서두원]]은 김재순의 사위였다. == 생애 == === 초기 활동 === [[경기도]] [[과천군]] 군내면에서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기수(金箕壽)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에 [[1904년]] [[12월 28일]] 그의 아버지 김기수는 그의 출세로 가선대부 내부협판에 추증되고, 할아버지 학생 김상팔(金相八)은 [[증직|증]]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원|비서원승]]에 추증되었으며 증조부인 학생 김경옥(金景沃)은 [[증직|증]] 정3품 [[통훈대부]] [[장례원]] 좌장례가 추증되었다. [[1871년]](고종 8년) [[7월 11일]]에 취재로 천거되어 [[규장각]][[검서관]]에 올랐으나 신병으로 9일만에 사직하였다. [[1878년]] [[9월 10일]] 오위부사과 등을 역임했다. 그뒤 [[사부학당]]의 유생으로 있다가 [[1888년]] 2월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응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바로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되었다. [[1895년]] [[10월 21일]] 자인 현감(慈仁縣監)으로 부임하였다. [[1898년]] 6품으로 재직 중 경효전의 신탑(神榻)을 개수하고 전폐(殿陛)를 수리하는데 감독관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그해 [[10월 29일]] 아마 1필을 하사받았다. === 대한제국기 활동 === [[1900년]] [[4월]] 정3품으로 승진하여 [[4월 10일]] [[비서원승]]이 되었으나 [[4월 11일]] 사직하였다. [[1904년]] [[9월 5일]] [[시종원]] 시종과 그해 [[11월 2일]] [[평리원]] 판사를 역임하고 그해 [[12월 27일]] [[내장원|내장원경]](內藏院卿)에 임명되었다. 다시 [[평리원]]판사를 겸하다가 [[1905년]] [[2월 27일]] 통신원 회판(通信院會辦)이 되고, 그해 [[4월 22일]] 통신원 총판이 사퇴하여 통신원 회판으로 서리총판사무(署理摠辦事務)를 겸임하였다. [[1905년]] 개교보생회(開敎保生會)라는 단체의 회장을 맡으며 사회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해 [[12월 30일]] 통신원 총판(通信院摠辦)에 임명되었다. [[1906년]] [[6월 7일]] [[통신원]] 회판(會辦)직에서 퇴직한 것을 계기로 여러 친일 단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08년]] 6월 [[경제연구회]]를 설립하였고, [[1909년]] 7월에는 신궁봉경회를 재건해 회장이 되었다. 신궁봉경회의 재건 취지는 한국의 국조인 [[단군]]과 일본의 건국신인 [[아마테라스]]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함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신궁 (신토)|신궁]]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의 조종 하에 설립되어 [[대한제국 순종|순종]]의 장인인 [[윤택영]]이 총재에 취임하고 순종의 큰아버지인 완흥군 [[이재면]]은 부총재를 맡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김재순은 신궁봉경회에서 내분을 겪은 끝에 이 단체를 탈퇴했고 1909년 8월 신궁봉경회와 비슷한 취지를 담은 [[신토]] 숭상 단체인 신궁경의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았다. [[흥선대원군]]의 적손인 [[이준용]]과 황실의 인척인 [[이재극]]을 끌어들인 이 단체는 1909년 11월 4일 [[안중근]]에게 살해당한 [[이토 히로부미]] 추도식을 열었으며, [[1910년]] 4월부터 7월까지 [[동소문]] 밖의 [[북관묘]]를 철거하고 신궁을 설치하려고 시도했다. 이 무렵 김재순은 [[일본]]을 드나들며 황태자신궁 설치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 한일 합방 전후 === 단군과 아마테라스가 형제간이라는 김재순의 [[일선동조론]] 주장은 당대에도 황당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08년경부터는 일본을 왕래하며 자신이 내각 총리나 장관으로 입각할 것이라는 등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자금을 끌어들여 갚지 않는 등의 사기 행위로 물의를 일으켰다. 1910년(융희 4년) [[9월 28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사흘 앞두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한일 합방]] 이후에는 [[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자금을 모았다가 [[1913년]] 8월 발송 직전 체포되었다. [[1913년]] 8월에는 독립운동 조직인 [[독립의군부]] 사건과 관련하여 사기취재죄로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사건 관련자들은 자신이 일본 정계에 끈을 갖고 있는 실력자이며 한일 병합 이전부터 독립운동을 해왔다는 김재순의 말을 믿고 독립운동 자금을 내주었으나, 이는 모두 사기였다며 김재순에게 돈을 갈취당했고 주장하였다. === 사후 === [[1962년]]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때 심사 당시 [[신궁봉경회]]와 일본 황태자 신궁 설치 운동에 가담한 사건, 독립의군부 자금 모집과 관련된 사기 사건으로 인해 [[독립의군부]] 사건의 다른 관련자들과는 달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신궁봉경회]]와 [[일본]] 황태자신궁 설치 운동에 가담한 일로 [[2006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친일단체 부문에 포함되었다. == 가족 관계 == * 증조부 : 김경옥(金景沃) ** 할아버지 : 김상팔(金相八) *** 아버지 : 김기수(金箕壽) *** 어머니 : ? **** 부인 : 한산이씨 ***** 장녀 : 금산김씨([[1901년]](?) ~ ?) ***** 사위 : 서두원(徐斗源, [[1900년]] [[9월 27일]] ~ ?) ****** 외손자 : 서동규(徐東圭, [[1914년]] [[6월 9일]] ~ ?) ****** 외손부 : 전주이씨([[1914년]] ~ ?) ******* 진외증손 : 서홍덕(徐弘德, [[1948년]] ~ ) ****** 외손자 : 서동협(徐東鋏, 다른 이름은 동협(東協), [[1917년]] [[5월 25일]] ~ ?) ****** 외손부 : 파평윤씨 * 장인 : 이유부(李裕溥, 본관은 한산,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됨) * 사돈 : 서재춘(徐載春, [[1859년]] [[3월 4일]] ~ [[1888년]] [[9월 5일]]) - 사위 [[서두원]]의 할아버지 * 사돈 : 은진송씨([[1860년]] ~ [[1916년]] [[2월 14일]]) * 사돈 : 서영석(徐英錫, [[1879년]] [[2월 5일]] ~ [[1966년]] [[2월 29일]]) - 사위 서두원의 아버지 * 사돈 : 연안이씨(延安李氏, [[1879년]] ~ ?) ** 사돈 : [[서재필]](徐載弼, [[1864년]] [[1월 4일]] ~ [[1951년]] [[1월 5일]]) - 사위 서두원의 종조부 ** 사돈 : [[서재창]](徐載昌, [[1865년]] ~ [[1884년]] [[12월 13일]]) - 사위 서두원의 종조부 == 같이 보기 == * [[신궁봉경회]] * [[신궁경의회]] * [[서재필]] * [[서재창]] * [[윤치호]] * [[김호규]] * [[김성근 (조선귀족)|김성근]] * [[이호성 (대한제국)|이호성]] == 참고 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연도=2006 |발행월=12 |id=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출판위치=서울 |쪽=881~897쪽 |장=김재순 |장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6JOSA/JONGKYO/KIMJAESUN.pdf }}{{깨진 링크|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6JOSA/JONGKYO/KIMJAESUN.pdf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생몰년 미상]] [[분류:조선의 문신]] [[분류:조선의 정치인]] [[분류:대한제국의 관료]] [[분류:대한제국의 법관]] [[분류:대한제국 고종]] [[분류:대한제국 순종]] [[분류:서재필]] [[분류:일제강점기 사람]] [[분류:한국의 사기범]]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금산 김씨]] [[분류:과천시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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