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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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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llang|fr|noblesse oblige}}, [[IPA]]: {{IPA|/nɔblɛs ɔbliʒ/}}, {{llang|en|Nobility Obliges}})란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구절이다. [[정치인 가문]](政治人 家門, {{llang|en|Politician Family}})의 모범적 사례를 들 수 있다. == 어원 ==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1347년,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된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llang|fr|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처형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ref>{{뉴스 인용 |제목 = 칼레의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url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09&aid=0002069473 |출판사 = OSEN |저자 = 정덕현 기자 |쪽 = |날짜 = 2009-05-12 |확인날짜 = 2009-12-15}}</ref> == 로마 ==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ref name="autogenerated1">예종석(2006년), 살림지식총서 261《노블리스 오블리주》,7쪽, 살림출판사</ref> === 병역의무 === 경영학자인 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가 쓴 《노블리스 오블리주》살림출판사에 의하면, 로마공화정과 고대 그리스의 지배계급들이 누리는 특권은 사회공동체에서의 의무를 다할 때에 주어지는 권리였다. [[로마]]공화정에서 귀족들은 재산을 사회공동체에 되돌림을 하였으며, 인민(Poplus)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솔선하여 국방의 의무를 다하였다. 귀족들은 카르타고의 명장인 [[한니발]](라틴어:hannibal)이 지휘한 [[카르타고]]군대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하였고, 16년 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는 13명의 [[집정관]](Consul)이 전사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귀족들이 너무 많이 전사하여 사회공동체에서 귀족들은 15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사자의 3분의 1이 귀족인 적도 있다고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집정관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고위공직자로 귀족계급을 대표하며, 로마공화정의 관리 중에서 가장 높은 관직이었다. 또한 로마에서는 병역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호민관]]이나 집정관등의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었을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당연하게 여겨졌다.<ref>《예수 신화인가, 역사인가》/정승우 지음/책세상</ref> === 기부활동 === [[고대 로마]]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한 귀족에 대해서 귀족의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귀족]]들은 이를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법을 제안한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법의 이름을 만들었다. * 아피아 가도 (Via Appia): "아피우스의 길"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312년, 재무관이었던 아피우스가 입안하고 [[원로원]]이 가결하고 아피우스 자신이 총감독을 맡아서 건설한 길이다. * 라티나 가도 (Via Latina) * 티부르티나 가도 (Via Tiburtina) * 노멘타나 가도 (Via Nomentana) * 셈프로니우스 도로법: 셈프로니우스가 제안한 도로법 * 율리우스 농지법: 율리우스가 제안한 농지법 === 사회통합 === 이렇듯 지배계급인 로마의 귀족들이 [[사회]]적인 의무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전통은 로마사회의 통합을 이루었으며<ref name="autogenerated1" />, 나라에서도 장려책을 사용해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 미국 == 고대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미국]]에도 전승되어, 미국 법령에 제안자의 이름이 들어가 “매케인-파인골드법”([[:en:Bipartisan Campaign Reform Act|McCain-Feingold Act]]) 같이 [[법률]] 명칭을 부른다던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멜론 대학교]], 은행가 [[존스 홉킨스]]가 세운 [[존스 홉킨스 대학교]] 식으로 설립자의 이름을 붙인 대학등이 현재 미국에 존재한다. 미국은 로마와 같이 상업주의를 추구하며, [[법률]]이 매우 발달해 있으며, 영향력은 전 세계적인 점에서도 고대 로마와 매우 닮았다. [[원로원]]과 [[민회]]로 구성된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도 [[하원]]과 [[상원]]으로 모방하고 있다. == 영국 == 영국은 영국 왕실 및 왕실에 속한 귀족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징병제]]가 이에 해당된다. 반드시 영국 왕실 및 왕실에 속한 귀족들의 자녀들은 영국 병역법과 왕실 내부 규율에 따라 희망하는 일시에 장교의 신분으로 군복무를 마치도록 되어있다고 하며, 영국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된다.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전쟁인 [[포클랜드 전쟁]]에도 [[요크 공작 앤드루|앤드루 왕자]]가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영국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 중국 == 잉글랜드의 지리학자(여성)[[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인화 옮김,살림)에서 죽을 쑤어서 [[빈곤]]층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배려한 [[청나라]] [[장군]]을 소개했다. 그가 [[청일전쟁]]에서 전사하자 기독교 [[선교사]]들은 진심으로 애석하게 여겼다. == 대한민국 ==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들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선비로서 의병활동한 분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저명인사나 소위 상류계층의 [[병역기피]]가 매우 오래된 병폐로 잔존하고 있다. 정훈이라고 하여, 군인 정신교육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매우 강조하고 있으나 [[고대 로마]]와 로마를 따라하는 미국처럼, 법률 명칭이나 공공시설 명칭 등에 귀족의 이름을 붙여서 “혜택”을 부여하거나 해서, 귀족계층 내부의 유행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 병역활동 ===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강상구 지음, 흐름출판)에 따르면, [[김유신]] [[장군]]([[진골]]계급)등의 [[신라]]시대 지배[[계급]]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을 위한 [[백제]], [[당나라]]와의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그래서 피지배계급들에게 [[국가]]를 위한 헌신을 요구할 수 있었다. 경영학자 [[예종석 (1953년)|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신라가 통일을 한 힘을 신라 지배계급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찾고 있다. * 반굴의 전사 : 반굴은 김유신 장군의 동생인 김흠춘의 아들, 김유신의 조카이다. 그는 목숨을 다해 싸웠고, 이를 본 품일 장군도 관창으로 하여금 목숨을 다하여 싸우라고 하였다. 이를 본 신라 장병들이 힘을 내어 싸우니, 계백장군의 결사대에게 몰린 황산벌 전투에서 이겼다. * 원술이 부모에게 나당 전쟁 당시 석문전투에서 패전하였음에도 살아서돌아오자 버림을 받았다. * 김유신은 평양에 식량을 보내는 노동을 하였으며(671년, 67세), 일본, 고구려, 중국 당나라와 외교를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기부활동=== ==== 사례 ==== [[한국]]에서도 [[조선]] [[정조]] 당시 흉년으로 인한 기근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사서 분배한 거상 [[김만덕]], 군수업으로 번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대부분 사용한 [[최재형 (독립운동가)|최재형]],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민족적 자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이끌었으며,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친 [[김좌진]],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을 나눔으로써 실천하여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 치열했던 [[19세기]]에도 화를 입지 않은 [[경주 최부잣집]]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서 [[숙주나물]] [[통조림]]을 생산하는 라초이 회사를 운영할 당시 [[녹두]]를 공급하던 [[중국]] [[상인]]이 [[탈세]]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그래서 유한양행을 설립하자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여 [[정경유착]], [[탈세]], [[마약]]생산을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주식회사]] 체제로 경영하여 사원들이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번 돈으로 유일한은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 기타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국]]의 전통있는 학교인 [[이튼 칼리지]]의 학생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여 전사하였으며, 학교에서는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기념비를 제작하였다. 독일 귀족이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사례도 있는데, 비행기가 격추되어 탈출한 적은 사살하지 않아서 [[영국군]] 조종사들도 그의 전사를 애석하게 여겼다.<ref>예종석(2006년), 살림지식총서 261《노블레스 오블리주》, 13,15, 살림</ref> 즉, 유럽의 [[지식인]]들과 귀족들은 사회적 의무인 병역의무를 실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1945년]]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얻어 또래 소녀들이 봉사하고 있는 영국 여자 국방군의 구호품 전달 서비스부서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서 후에 영국 내에서 [[징병제]]를 폐지시켰다 하더라도, 영국 왕실 및 왕실에 속한 귀족들은 반드시 왕실 내부 규율과 영국 병역법에 따라 장교의 신분으로 군복무를 하도록 규정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도록 한다고 한다. == 같이 보기 == * [[이배원 가옥]]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https://web.archive.org/web/20050525215715/http://h21.hani.co.kr/section-021105000/2004/09/021105000200409160527017.html 경주 최부잣집_“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한겨레 21 2004년 9월 16일 제527호]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상류계급]] [[분류:도덕]] [[분류:프랑스어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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