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요즘 화제
임의의 문서로
sitesupport
사용자 모임
사랑방
사용자 모임
관리 요청
편집 안내
소개
도움말
정책과 지침
질문방
한울위키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대원사 (완주군)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대원사 (완주군)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일반 사용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사찰 정보 |사찰 이름 = 완주 대원사 |건립 연대 = 670년([[신라 문무왕]] 9년) |창건자 = 일승(一乘)·심정(心正)·대원(大原)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조계종]] |국가 = 대한민국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구이면 원기리]] 997번지 |띄움 = |꼬리표 = |너비 = |대체지도 = |설명 = }} '''완주 대원사'''(完州 大院寺)는 대한민국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완주]] [[구이면|구이면 원기리]] 997번지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또한 지금은, 대한 [[불교]]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 제17교구 본사(本寺)이기도 한, '''[[금산사]]'''(金山寺)의 말사(末寺)이기도 하다. == 주요 역사 == === 완주 대원사의 창건 이전 === 일단, [[전북특별자치도]](全羅北道)의 [[완주군]](完州郡)의 [[모악산]](母岳山)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670년([[신라 문무왕]] 9년)의 [[신라|통일 신라]] 시대의, '''대원사'''(大院寺)의 공동 창건자는, [[고구려]](高句麗) 시대 말기 고승(학덕 높은 [[승려]])인, [[보덕]](普德) 화상의 제자였었던, 훗날 [[백제]](百濟)를 거쳐 [[신라|통일 신라]](統一 新羅)로 귀화한 귀화자 출신인,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 3명, 그들인즉 일승(一乘), 심정(心正), 대원(大原)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공동 창건자는 이들 3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의 스승 [[보덕]] 화상이 650년([[고구려 보장왕|보장왕]] 8년, [[백제 의자왕|의자왕]] 9년)에, [[고구려]](高句麗)를 마지막으로 등지며, [[백제]](百濟)의 [[사비성|사비]]([[부여 부소산성|부소산성]])로 떠날때에 동행하였으나, 여섯 해가 지난 훗날 656년([[백제 의자왕|의자왕]] 15년)에 스승 [[보덕]] 화상이 [[백제]]를 처음으로 나섬과 함께 떠나면서 홀로 [[아스카 시대]](일본)의 [[나라현|나라]](奈良)로 11년 동안 떠나자, 오히려 따라가지 않으며, 같은 해에 [[백제]] 시대의 [[전주시|완산주]](完山州)라는 지역으로 떠난 그들(일승, 심정, 대원)은 순전히 [[불교]] 수도 생활을 [[백제]]에서 새로 펼치며, 결국 660년([[백제 의자왕|의자왕]] 19년, [[신라 태종 무열왕|태종 무열왕]] 6년)에 [[백제]]의 멸국(멸망)을 목도하였고, 스승 [[보덕]] 화상이 [[아스카 시대]] [[나라현|나라]](奈良)라는 지역을 떠난 이후, 667년([[신라 문무왕|문무왕]] 6년)의 3월 3일, 통일 [[신라]] 완산주 경복사(景福寺) 등으로 이전하며, 이듬해 668년([[신라 문무왕|문무왕]] 7년)에 고승 [[보덕]] 화상과 3제자(일승, 심정, 대원)가 다시 만나면서 잠시나마 해후를 하였으며, 이어 그들 4명 또한 같은 해(668년)에 통일 [[신라]](統一 新羅)에서, 668년([[신라 문무왕|문무왕]] 7년, [[고구려 보장왕|보장왕]] 26년)에 자신들의 고국 [[고구려]]의 멸국(멸망)을 목도하게 되었다. === 창건 이후 === ; 완주 대원사의 창건(670년)과 훗날 거듭 증창 및 중건, 그리고 [[고려]] 및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 시대의 특정 화젯거리 * 670년([[신라 문무왕|문무왕]] 9년)에는, 옛 [[고구려]] 시대 말기의 [[불교]] [[승려]] 출신의 [[신라|통일 신라]] 초기 시대의 귀화한 [[불교]] [[승려]]인 일승(一乘), 심정(心正), 대원(大原)이라는, 당대의 3대 불교 선사 등에 의해 670년, '''대원사'''(大院寺)가 창건되었으며, 훗날 [[후백제]] 및 [[고려]] 시대에까지도 해당 [[사찰]]의 역대 [[승려]]들의 학덕(學德)이 드높아짐. ; [[고려]] 시대 * 특히 훗날 [[고려]](高麗) 시대 초기 때에는 1066년([[고려 문종|문종]] 20년)에, 당시 38세 남짓의 국사 [[난원]](爛圓, 속명: 이순(李淳), 생몰: 1029?~미상)<ref>[[고려 문종|문종(왕휘)]]의 처갓댁 손아랫처남.</ref> 스님이라는 국사와, 그의 생질(甥姪, 누나 부부의 아들.)인 당시 열두살 남짓 어린 시절의 [[의천]](義天, 속명: 왕후(王煦), 생몰: 1055~1101)<ref>[[고려 문종|문종(왕휘)]]의 넷째아들.</ref> 선사라는, 그 두 [[승려]](僧侶)가 고려 완산주 '''대원사'''(大院寺)에서 달포간의 과객(過客)으로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재차 새삼 유명해짐. * [[고려]](高麗) 시대 중기 시절에는 1136년([[고려 인종|인종]] 14년)에 고승 [[원명국사|복세]](福世, 속명: 왕징엄(王澄儼), 생몰: 1090~1141)<ref>[[고려 문종|문종(왕휘)]]의 친손이자, [[고려 인종|인종(왕해)]]의 친숙부이고, [[의천]](義天, 속명: 왕후)이라는 선사의 친갓댁 친조카.</ref> 선사라는 국사가 증창 및 재창건(재차 건립)하였고, 또한 해당 사찰의 명성이 견고해짐. * [[고려]](高麗) 시대 말기 시절이기도 하던, 1374년([[고려 공민왕|공민왕]] 23년)에 당시 55세 남짓의 [[혜근]](惠勤, 속명: 아원혜(牙元惠), 생몰: 1320~1376) 선사라는 이가 중창(중건)하였으며, 견고한 해당 [[사찰]]의 명성은 [[조선]] 시대 초기에까지도 지속됨. ; [[조선]] 시대 * [[조선]](朝鮮) 시대 초기 [[조선 태종|태종]] 치세 시절에는, 1415년([[조선 태종|태종]] 15년)의 춘삼월 시에, 당시 37세 남짓의 [[왕족]] [[영천군 이담]](寧川君 李湛, 생몰: 1379~1431)과 열세살 남짓의 왕족 [[풍안군|풍안군 이효손]](豊安君 李孝孫, 생몰: 1403~1463)이라는 두 부자(父子)가 조선 전라도 완주 '''대원사'''(大院寺)에서 보름간의 과객(過客)으로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또다시 유명해짐. * [[조선]](朝鮮) 시대 중기 [[조선 선조|선조]] 치세 시절에는 1597년(선조 30년)에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는 전란 등으로 인하여, '''대원사'''(大院寺)가 왜적(倭賊)들한테 불탄 후, 잠시 9년 남짓 동안의 폐허가 됨. * 한때 [[조선]](朝鮮) 시대 중기 시절인 1604년([[조선 선조|선조]] 37년)에 [[전라도]] [[김제 김씨|김제]] [[만경읍|만경면]] [[김제시|화포리]] 출신의 고승 [[진묵대사부도|진묵]](震默, 속명: 김일옥(金一玉), 생몰: 1562~1633)<ref>아버지 김병익(金炳瀷)과, 어머니 [[함열읍|함열]] [[함열 남궁씨|남궁씨]](咸悅 南宮氏) 사이에서 2남 3녀(5남매) 중 막내(차남)로 출생하여, 1568년 7세 남짓 시절에 동자 [[승려]]로 출가.</ref> 선사라는 대사가 [[전라도]] [[완주군|완주]] 지역에 정착 직후, 1606년(선조 39년)에서부터 1612년([[조선 광해군|광해군]] 4년)에까지, 어언 6년 남짓 동안 '''대원사'''(大院寺)를 거듭 중건(증창 및 재건)하여, 1612년 당시에서부터 입적(하세)할 무렵 때까지 본격적으로 머물렀으며, [[사찰]]의 명성이 거듭 견고해짐. * [[조선]](朝鮮) 시대 중후기 시절인 1733년([[조선 영조|영조]] 9년)에, 천조(千照, 속명: [[동래 김씨|김동명]](金東明), 생몰: 1692~미상) 스님이라는 선사가 '''대원사'''(大院寺)의 [[대웅전]] 및 명부전 또한 모두 증건(증창 및 중건)하였음. * [[조선]](朝鮮) 시대 말기 시절인 1886년([[대한제국 고종|고종]] 23)에, 강원도 고성 [[건봉사]](乾鳳寺)의 [[승려]] 출신이던 금곡(錦谷, 속명: [[강릉 함씨|함광]](咸洸), 생몰: 1835~미상) 스님이라는 선사가, 강원도 명주 지역의 거사 함수산(咸水山, 생몰: 1850~미상)과 함께 의기상투(意氣相投)하여, 전라도 완주 '''대원사'''(大院寺)에 칠성각(七星閣) 또한 짓고 전라도 김제 지역의 산내 암자인 내원암(內院庵)에 있던 염불당(念佛堂)은, 오히려 전라도 완주 지역의 '''대원사'''(大院寺)로 옮겨오기도 하였음. ; [[대한제국]] 시대 * 훗날 1900년([[광무 (연호)|광무]] 3년)의 [[대한제국]](大韓帝國) 초기<ref>[[대한제국]] [[대한제국 고종|고종]] 치세 시절이기도 하였던, [[광무 (연호)|광무]] 시대.</ref> 시대에는 종교사상가인 [[강일순|강증산]](姜甑山, 본명: [[강일순]](姜一淳), 생몰: 1871~1909)이, [[철학]](哲學)의 [[도 (철학)|도]](道)를 깨우친 곳으로도 유명하다.<ref>[[강일순|강증산]](姜甑山)이 바로 '''대원사'''(大院寺)라는 이 [[사찰]]에서 [[철학]](哲學)의 [[도 (철학)|도]](道)를 깨우친 계기 및 동기로써 1901년 [[증산교]](甑山敎)를 창설하는 계기가 됨.</ref> == [[대웅전]] 관련 == 완주 대원사 [[대웅전]] 뒤편에 5층 석탑이 있으며, 높이가 238cm로, 2층의 기단 위에 5층을 세웠다. == 같이 보기 == * [[완주 대원사 목조삼세불좌상]] * [[완주 대원사 용각부도]]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두피디아|101013000779320|완주 대원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0014644|완주 대원사}} {{글로벌세계대백과}}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토막글|불교|건축}} [[분류:전북특별자치도의 절]] [[분류:금산사|+]]<!--금산사의 말사--> [[분류:완주군의 건축물]] [[분류:대한불교조계종의 절]]
대원사 (완주군)
문서로 돌아갑니다.
검색
검색
대원사 (완주군) 문서 원본 보기
새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