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요즘 화제
임의의 문서로
sitesupport
사용자 모임
사랑방
사용자 모임
관리 요청
편집 안내
소개
도움말
정책과 지침
질문방
한울위키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무장군인 김해경찰서 습격 사건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무장군인 김해경찰서 습격 사건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일반 사용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무장군인 김해경찰서 습격 사건'''(武裝軍人金海警察署襲擊事件)은 1965년 7월 29일 새벽에 무장한 김해 공병학교 소속 군인 35명이 김해경찰서를 습격하여 소속 순경을 납치하고, [[경향신문]]과 [[부산일보]] 특파원의 가택에 침입하여 잠자고 있던 두 기자를 납치하고 이들을 [[고문]]한 후 [[방첩대]]에 넘긴 사건이다.<ref name="동아_1">防諜隊서酷毒한拷問, 《동아일보》, 1965.7.30</ref> == 사건 발생 및 경과 == 사건은 그 며칠 전인 7월 24일 23시경에 발생했던 김해경찰서 소속 순경과 육군공병학교 교장 사이의 다툼이 원인이 되었다. 김해읍 수재민 지원을 준비 중이던 순경을 상황을 오해한 사복 차림의 공병학교 교장이 질책하였고, 이에 순경이 응수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교장은 순경을 따라 경찰서로 쫓아가 부대 주번 사령에 연락하였고, 차를 타고 도착한 20~30명의 인원이 경찰서에서 소란을 피웠다. 이러한 김해경찰서와 육군공병학교 사이의 다툼은 25일에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다.<ref name="동아_2">鄭准將과金巡警是非→新聞報道→拉致 事件줄거리, 《동아일보》, 1965.7.30</ref> 7월 27일 23시 50분경, [[한국일보]] 김해 주재 기자의 가택에 군복을 입은 괴한 2명이 찾아가 기자의 머리를 [[벽돌]]로 쳐 쓰러뜨리고 도주하였다. 군기관에서는 교장과 동창인 김해경찰서 서장으로부터 신문 기사는 허위 보도라는 해명서를 받아냈다.<ref name="동아_2"/> 7월 29일 새벽, 군복을 입고 [[권총]]과 [[카빈총]]으로 무장한 30여 명의 인원과 501방첩대원 6명이 3/4톤 트럭과 지프차에 나누어 타고 김해경찰서에 난입하여 교장과 다투었던 순경을 납치·대동하고, '부산일보'와 '경향신문'의 두 기자의 가택을 침입, 총으로 위협하여 공병학교로 납치했다.<ref name="동아_2"/> 7월 29일 납치된 순경이 [[고문|물고문]]을 당하고 오후 늦게 풀려나와 경상남도 경찰청 정보과에 인계, 병원에 입원하였다. 두 기자는 501방첩대로 연행되어 경위서와 자백서 등을 강제로 작성하고, 둔기로 고문을 당했으며, 고문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후 15시 30분경 10여 시간 만에 풀려나와 김해 파견대를 통해 의식 불명 상태로 김해의 병원에 입원하였다.<ref name="동아_3">防諜隊서酷毒한拷問, 《동아일보》, 1965.7.30</ref> == 사건 수사 == 육군본부는 7월 30일 오전, 김해에서 발생한 무장군인의 경찰서 집단 난입 사건에 대하여 관련된 군인 전원을 긴급 구속했다고 발표하였다.<ref name="경향_1">관련軍人全員구속, 《경향신문》, 1965.7.30</ref> == 각주 == <references/> {{대한민국의 군사 사건}}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965년 대한민국]] [[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
무장군인 김해경찰서 습격 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
검색
검색
무장군인 김해경찰서 습격 사건 문서 원본 보기
새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