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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조령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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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이름 = <small>문경 조령 관문<br />(聞慶 鳥嶺 關門)<br />(Gates of Joryeong Path, Mungyeong)</small> | 그림 = Saejae third gate backside.jpg | 그림크기 = 300 | 그림설명 = 문경관문(제1, 제2, 제3관문 및 부속성벽) | 국가 = {{KOR}} | 유형 = [[대한민국의 사적 (제101호 ~ 제200호)#제101호 ~ 제200호|사적]] | 번호 = 147 | 지정 = [[1966년]] [[3월 22일]] | 해지 =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55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문경시 | 참고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면적 = 50,833m<sup>2</sup> | 수량 =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문경읍|문경 상초리]]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6|46|05.7|N|128|04|33.3|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13,01470000,37 }} {{문화재 정보 | 이름 = 주흘산조령관문일원<br />(主屹山鳥嶺關門一圓)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북도]] | 유형 =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기념물]] | 번호 = 18 | 지정 = [[1974년]] [[12월 10일]] | 해지 =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21-1번지 외 615필 | 문화재청 = 23,00180000,37 }} '''문경 조령 관문'''(聞慶 鳥嶺 關門, {{llang|en|Gates of Joryeong Path, Mungyeong}})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ref>{{웹 인용 | 저자 = 조규덕 | 웹사이트 = 문경시 | 제목 = 문경새재도립공원 | url = https://www.gbmg.go.kr/tour/contents.do?mId=0101010100 | 날짜 = 2018-4-2 | 확인날짜 = 2022-1-29 | 보존url = | 보존날짜 = }}</ref>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문]]이다. 제1·제2·제3관문 및 부속성벽을 통틀어 말한다. [[1966년]] [[3월 2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 현지 안내문 == {{인용문|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이다. 이곳은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잡았다.<ref name="현지">현지 안내문 인용</ref> 조선 선조 2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가토 기요마사의 군사와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조령에서 왜군을 막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서 싸우다가 패하고 말았다.<ref name="현지"/>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해 조령에 대대적으로 관문을 설치할 것을 꾸준히 논의하다가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개의 관문을 완성했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한다.<ref name="현지"/> 조동문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후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후부터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숙종 34년(1708)에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옛 성을 고쳐 쌓고, 중성을 삼아 관문을 조곡관이라 했다. 현재의 시설은 페허가 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ref name="현지"/> ※(문경관문 → 문경 조령 관문)으로 명칭변경 (2011.07.28 고시)<ref name="현지"/>}} == 제1관문 (주흘관)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사적 제147호. 새재 입구에 있는 성문이다. 숙종 34년(1708)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전쟁]] 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주흘관은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고,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가 1∼3m, 폭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쪽이 400m이다.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 제2관문 (조곡관) ==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하였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 곳에는 조동문을 설치하였다. 1907년 훼손되어 1978년에 복원하고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 3.6m, 길이 6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m, 길이 73m이고, 좌우에 부속된 산성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 제3관문 (조령관) == 새재 정상에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 초(숙종 34년:1708)에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에 홍예문과 석성, 그리고 누각을 복원했다. 조령관을 기준으로 남쪽은 문경 지역이고 북쪽은 충주 지역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마폐봉을 지나 북암·[[동암문]]·부봉·[[주흘산]]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깃대봉·[[조령산]] 공산진·[[이화령]]으로 이어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3.88m, 폭 2.98m, 길이 6.12m이며,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2mm, 길이 185m이고, 부속산성의 높이는 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cm이다. == 참고 문헌 == * {{글로벌세계대백과|제목=《문경 조령 관문》}} == 각주 == {{각주}} == 같이 보기 == * [[문경새재]] == 관련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13,01470000,37|문경 조령 관문 (사적 제147호)}} * {{문화재청 문화재|23,00180000,37|주흘산조령관문일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18호)}} {{경상북도의 성}} {{경상북도의 공원}}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경상북도의 사적]] [[분류:문경시의 문화유산|문경 조령 관문]] [[분류:대한민국의 문]]
문경 조령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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