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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문서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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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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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정보 | 이름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원어이름 = <!-- 한국어 명칭이 원래 명칭이 아닌 경우 --> | 그림 = Park Jong Cheol Memorial Room in Namyeongdong Daegong Bunsil.jpg | 그림설명 = 박종철이 고문으로 요절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 좌표 ={{좌표|37.540846|N|126.971757|E|display=title, inline|format=dms}} | 장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br> [[남영동 대공분실|대공분실]] 509호 | 날짜 = [[1987년]] [[1월 14일]] | 사망자 = [[박종철]] | 부상자 = | 결과 = [[6월 항쟁]], 대한민국의 민주화 | 원인 = <!-- 사건의 시발점이 된 계기 --> | 웹사이트 =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朴鍾哲 拷問致死 事件)은 [[1987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대한민국의 경찰|경찰]] [[수사관]]들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심문하던 중 물고문으로 요절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집회가 시작되었으며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전개 == === 고문치사와 사건 은폐 === {{참고|박종철}} 사건 당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재학생이었던 박종철은 [[1986년]]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를 한 이유로 구속되어 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고 출소 이후에도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가 이후 [[1987년]] [[1월 13일]] 자정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는데<ref>{{웹 인용|제목=고 박종철열사 25주기 추모제...(슬픔)|url=http://www.kdemo.or.kr/site/notification/event/925|출판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날짜=2011-12-29}}{{깨진 링크|url=http://www.kdemo.or.kr/site/notification/event/925 }}</ref> 당시 연행 명목은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추위'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었던 [[박종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취조실에 연행해간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고 이에 경찰이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면서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2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리고 11시 45분경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이 현장에 도착해 검진했을 당시 박종철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고<ref>{{웹 인용|url=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303/99973330/1|제목=“물고문 보도… 내 생애 이런 신문을 다 보는구나 했다”|출판사=동아일보|날짜=2020-03-03}}</ref> 경찰은 14일 밤에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화장할 계획이었으나 이에 [[최환]] 부장검사는 사체보존명령을 내렸으며 사건 지휘는 그날 밤 당직이었던 [[안상수(1946년 2월)|안상수]] 검사가 맡았다. 사건 다음 날 [[1월 15일]] 오후 6시가 넘어 한양대 병원에서 부검이 실시되었는데 부검 결과 온몸에 피멍이 들고 엄지와 검지 간 출혈 흔적과 사타구니, 폐 등이 훼손되어 있었으며 복부가 부풀어 있고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 부검은 당시 경찰 소속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황적준]] 박사, 한양대 [[박동호]] [[한양대학교]] 교수가 맡았는데 군부와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1월 17일]] [[황적준]] 박사는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1년 뒤 부검 과정에서 받았던 경찰의 회유와 협박을 받은 내용을 적은 일기장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11248.html|제목=부검 통해 드러난 고문사…경찰은 회유·협박 / 박정기|출판사=한겨레|날짜=2011-12-21}}</ref><ref>{{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14632.html|제목=조국 “안상수가 박종철 고문은폐 막았다? 사실 아냐”|출판사=한겨레|날짜=2012-01-13}}</ref> 한편 박종철이 희생하며 구해냈던 선배 박종운은 이후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극우]]-[[뉴라이트]] 계열로 변절한 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 정치 행보를 걷게 되었다. === 언론보도와 부검 === [[파일: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png|섬네일|1987년 1월 15일 중앙일보에 삽입된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기사]] 박종철 학생의 요절 이후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는 한 검찰 간부가 “경찰, 큰일 났어”라고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단서를 잡고, [[1월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2단 기사를 데스크로 내보냈고 석간에 단신으로 실렸는데<ref>[http://news.joins.com/article/2082483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 [[중앙일보]] (1987년 1월 15일)</ref> 이 소식은 다른 국내 언론과 외국 언론에서도 인용되었고 그날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 저녁뉴스에서도 단신으로 보도되었다.<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70367 치안본부 공안사건과 관련 박종철 군 숨져 외] - [[KBS 뉴스 9|KBS 9시 뉴스]] (1987년 1월 15일)</ref> 보도 다음 날인 [[1월 16일]] [[강민창]]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장과 [[박처원]] 치안감이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여기서 박 치안감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요절하였다”고 발표했으나 [[동아일보]]는 당시 부검의 의사로 대공분실 509호실에 출입했던 오연상으로부터 "사건현장에 물이 흥건한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하며 고문에 의한 요절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결국 기자회견 4일 만인 [[1월 19일]] 강 치안본부장은 다시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박종운 군의 소재를 묻는 심문에 답하지 않자 머리를 한 차례 잠시 집어넣고 내놓았으며 계속 진술을 거부하자 다시 집어넣는 과정에서 급소인 목 부위가 욕조 턱에 눌려 질식사했다"고 "가혹행위"로 인한 요절을 시인하였다.<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70439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학생 박종철군 가혹행위로 숨져] - [[KBS 뉴스 9]] (1987년 1월 19일)</ref> 이후 조한경 반장과 강진규 경사 등 고문 경찰관 2명을 사건 주도자로 지목해 구속한 뒤 사건을 축소했고 부검을 거친 박종철 군의 시신은 가족 허락도 없이 벽제 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사건 수습을 위해 내무부장관에 임명된 [[정호용]]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며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했는데 정 장관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민중 학살의 책임자 중 하나로 지목되던 사람이었기에 이 말 역시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 천주교 사제단의 폭로 === 사건 주도자로 구속된 조한경 반장과 강진규 경사는 끝내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는데 당시 안유 구치소 보안계장은 이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이들 외에 추가로 경찰관 3명이 고문에 관여했고 경찰은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안 계장은 마침 수감 중이었던 [[이부영]] 당시 [[전민련]] 상임의장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고 이에 이 씨는 쪽지에 추가 관여 은폐 사실을 적은 뒤 서로 친분이 있었던 한재동 교도관을 통해 외부에 전달토록 했으며<ref name="폭로전달">{{뉴스 인용|url=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684418#cb|제목=25년만에 얼굴 드러낸 박종철 사건 폭로 주역들|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18-01-02|확인날짜=2018-07-13}}</ref> 해당 쪽지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와 [[함세웅]] 신부에게까지 전달되었다.<ref>{{웹 인용|제목=박종철 사건 1억 주고 덮으려해 분노가 치밀어… |출판사=중앙일보 |url=http://news.joins.com/article/7245174 |날짜=2012-01-31}}</ref> 그리고 같은 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도미사 도중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했는데 대공경찰의 대부라는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의 주도 아래 모두 5명이 가담한 고문치사사건을 단 2명만이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꾸민 뒤 총대를 멘 2명에게는 거액의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ref>{{저널 인용 | 저자 = [[한홍구]] | 날짜 = 2001-05-22 | 제목 =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 저널 = 한겨레21 | issue = 제360호 | url = http://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1/05/021075000200105220360052.html | 확인날짜 = 2007-12-09}}</ref> 폭로 다음날인 [[5월 19일]] [[통일민주당]]에서는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87-05-19&officeId=00020&pageNo=1 民主黨서도 조사키로 "朴鐘哲군사건은 조작됐다"]</ref> 아버지 박정기씨는 명확한 진상규명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대행해 달라는 진정서를 [[대한변호사협회]]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87-05-19&officeId=00020&pageNo=1 숨진 과정 眞相규명 賠償소송代行 진정] - [[동아일보]]</ref> == 기타 == * 당시 경찰이 박종철을 고문치사하면서까지 소재를 밝히려 했던 장본인 [[박종운]]은 이후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을 지냈고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하여 논란이 일었다.<ref>{{뉴스 인용 |저자=공희정 기자 |제목=박종운씨 인터뷰 2--"정형근 의원 박종철 열사 고문살인 은폐공작 가담했으면 법적 처벌 받아야" |url=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01662 |뉴스=오마이뉴스 |날짜=2000-02-29 |확인날짜=2015-03-31}}</ref> * 수사를 지휘했던 [[신창언]] 검사는 이후 [[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전신)의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냈다.<ref>{{뉴스 인용 |저자=최고운 기자 |제목=[취재파일] '박종철 고문' 사건의 말단 검사는 대법관이 될 수 있을까? |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823642 |뉴스=SBS뉴스 |날짜=2015-02-06 |확인날짜=2015-03-31}}</ref> * 담당 검사였던 [[박상옥 (법조인)|박상옥]]은 2015년 [[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민국 대법관|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사건이 축소, 은폐된 사실을 알고도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ref>{{뉴스 인용 |저자=나혜윤 기자 |제목=박상옥 후보자, ‘박종철 고문경관 공범’ 알고도 묵살 |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14 |뉴스=고발뉴스 |날짜=2015-02-05 |확인날짜=2015-03-31}}</ref> * 담당 검사였던 [[안상수 (창원 출신 정치인)|안상수]]는 한나라당 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 [[창원시장]]으로 선출되었으나 수사 당시 사건 은폐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천관율 기자 |제목=박종철기념사업회 “안상수 돈은 안 받아” |url=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729 |뉴스=시사IN |날짜=2011-03-07 |확인날짜=2015-03-31 |archive-date=2015-04-0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15131/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729 }}</ref><ref>{{뉴스 인용 |저자=이지은 기자 |제목=민주열사 이용해 홍보 ‘낯뜨거운 안상수’|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66503.html |뉴스=한겨레 |날짜=2011-03-04 |확인날짜=2015-03-31}}</ref> * 2019년 6월 2일 일요일 오후에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는 이날 방송 내용 중 [[전소민]]이 사레 들린 기침을 하자 ‘1번을 탁 찍으니 억 사례 들림’이라는 내용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하는 자막이 삽입돼 논란을 자아냈다. == 같이 보기 == *《[[1987 (영화)|1987]]》 - 2017년 개봉한 영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2년 3월 24일 '''1987, 종철이와 비둘기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0000074|박종철고문치사사건}} {{대한민국의 공안 사건}}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분류:6월 항쟁]] [[분류:1987년 대한민국]] [[분류:1987년 1월]] [[분류:대한민국의 고문]] [[분류:고문치사 사건]] [[분류:경찰 폭력]] [[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침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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