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요즘 화제
임의의 문서로
sitesupport
사용자 모임
사랑방
사용자 모임
관리 요청
편집 안내
소개
도움말
정책과 지침
질문방
한울위키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산청 삼우당 효자비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산청 삼우당 효자비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일반 사용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정보 | 이름 = 산청 삼우당 효자비<br />(山淸 三憂堂 孝子碑) |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그림크기 = 150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남도]] | 유형 =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문화재자료]] | 번호 = 52 | 지정 = [[1983년]] [[8월 6일]] | 해지 =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산청군)|단성면]] 사월리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 = | 참고 = | 면적 = 75m<sup>2</sup> | 수량 = 1기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산청 사월리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5|19|30|N|127|57|6|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31,00520000,38 }} '''산청 삼우당 효자비'''(山淸 三憂堂 孝子碑)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산청군)|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효자비이다.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52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문익점]] 선생이 살았던 마을에 서 있는 비로,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삼우당 문익점(1329∼1398)은 고려시대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것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돌아가시자 묘곁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 당시는 왜적의 침입이 잦아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노략질이 심하여 모두 피난을 가고 있었는데, 그 만이 홀로 평상시와 같이 곡을 하고 있었다. 왜적도 그의 이러한 효성에 감동하여 나무를 다듬어 ‘효자를 해치지 말라’라고 써서 세워 놓도록 하니, 그 때부터 이 지역이 평안하였다 한다. 그 후 조정에서는 고려 우왕 9년(1383) 그에게 표창을 내리면서, 마을을 ‘효자리’라 이름하도록 하였다. 비각안에 모셔둔 비는 낮은 사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비몸의 윗변은 살짝 둥글게 다듬었다. == 같이 보기 == * [[문익점]]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31,00520000,38|산청 삼우당 효자비}}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경상남도의 문화유산자료|산청 삼우당 효자비]] [[분류:산청군의 문화유산|산청 삼우당 효자비]] [[분류:효자비]] [[분류:고려의 석비]] [[분류:1383년 작품|삼우당 효자비]] [[분류:문익점]]
산청 삼우당 효자비
문서로 돌아갑니다.
검색
검색
산청 삼우당 효자비 문서 원본 보기
새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