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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용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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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이름 = 산청 용산서당<br />(山淸 龍山書堂) | 그림 = 산청_용산서당.jpg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남도]] | 유형 =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01호 ~ 제400호)#제301호 ~ 제400호|문화재자료]] | 번호 = 304 | 지정 = [[2001년]] [[12월 20일]] | 해지 =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오부면]] 가마길 8 (중촌리) | 시대 = 조선시대 | 관리 = 홍갑윤 | 참고 = | 면적 = 1동/1,180.3m<sup>2</sup> | 수량 =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산청 중촌리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5|30|20|N|127|53|35|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31,03040000,38 }} '''산청 용산서당'''(山淸 龍山書堂)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오부면]] 중촌리에 있는, 오촌 홍성해, 둔암 홍대해, 우봉 홍기범 등 삼현이 은거하여 학문을 연마하던 곳에 세운 서당이다. 2001년 12월 20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파일:20221222_용산서당.jpg|섬네일|20221222 용산서당]] [[파일:20221222_용산서당-02.jpg|섬네일|20221222 용산서당-02]] == 개요 == 용산서당은 오촌 홍성해, 둔암 홍대해, 우봉 홍기범 등 삼현이 은거하여 학문을 연마하던 곳에 세운 서당이다. 이 중 오촌 홍성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아 고을을 사수한 공이 있다. 본래는 '용산재'라는 재실이었지만 뒤에 서당으로 바꿨다. 이 서당은 1800년대의 건축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축물로서 가치가 있다. 건물구조는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구조체의 중요 부재들은 오래된 형상을 지니고 있는데, 외진주,·내진주,·대들보 등 여러 곳에 구멍이 나 있는데 곳곳이 구멍을 메운 형태이다. 가구는 대들보 위 중, 종도리 가구에서 다소 오래된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다. 방 천장은 좌우방 모두 우물반자를 하고 있고, 대청 뒷벽은 판장벽 대신 회벽으로 구성하였다. == 참고 문헌 == * {{문화재청 문화재|31,03040000,38}}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경상남도의 문화유산자료]] [[분류:산청군의 문화유산|용산서당]] [[분류:조선의 서당]] [[분류:조선의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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