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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국가 = {{KOR}} |그림 = 승정원일기 (303호).jpg |유형 = [[대한민국의 국보 (제301호 ~ 제400호)#제301호 ~ 제400호|국보]] |이름 = 승정원일기 |번호 = 303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수량 = 3,243책 |시대 = [[조선]], [[대한제국]] |지정 = [[1999년]] [[4월 9일]] |문화재청 = 11,03030000,11 }} 《'''승정원일기'''》({{한자|承政院日記}}, {{Llang|en|''Seungjeongwon ilgi, Journal of the Royal Secretariat''}})는 [[조선]] 및 [[대한제국]]의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 행정 사무 등을 매일 기록한 일기<ref>이 시기의 일기(日記)라는 낱말은 오늘날에 공무기록에 해당하는 일지(日誌)에 더 가깝다.</ref>이다. [[2001년]] [[9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1623년]]([[조선 인조|인조]] 1년) 음력 3월부터 [[1910년]]([[대한제국 순종|순종]] 4년)까지의 기록이 현존하며, 현재는 인조와 [[대한제국 고종|고종]] 시기의 일기가 번역되어 있다.<ref>{{웹 인용 |url=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S |제목=한국고전종합 승정원일기 고종 44년 |확인날짜=2013-08-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2004305/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S |보존날짜=2014-02-22 |url-status=dead }}</ref> 다른 이름으로는 '''후원일기'''(喉院日記)라고도 한다. == 개요 == 승정원일기는 행정과 사무, 왕명, 출납 등을 맡은 승정원의 사무를 기록한 일기이다. 단일 사료로서는 가장 방대한 양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모두 3,245책, 글자 수 2억 4,250만자다. [[1960년]]부터 [[1977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초서체]]였던 승정원일기를 [[해서체]]로 고쳐쓰는 작업을 하였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승정원일기 정보화사업을 진행하여 영인본 1책~111책, 127책~129책에 대한 전산화가 진행되었다. 원본 1부밖에 없는 귀중한 자료로 국보 제303호(1999.4.9)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세계 최대 및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f>[http://www.heritage.go.kr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f> == 보존과 소실 == 승정원의 주서(注書)·가주서(假注書)는 날마다 승정원의 일기를 썼는데, 매월의 일기는 다음 달 안으로 완성하여 보존되었다. 원래 조선 개국 이래의 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1592년]], [[선조 (조선)|선조]] 25년) 불탔고, [[1623년]]([[조선 인조|인조]] 1년)까지의 일기도 [[이괄의 난]]으로 말미암아 거의 사라졌다. 그 후 임진왜란 이후의 일기를 개수했으나, [[1744년]](영조 20년) 승정원의 화재로 인해 임진왜란 직후부터 [[1721년]]([[조선 경종|경종]] 1년)의 기록이 소실되어 [[1746년]](영조 22년)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해 개수했으나 본래 책수의 3분의 1도 안 되는 양만 개수할 수 있었다. 또 영조 때의 승정원 일기 중 임오년의 일(임오화변)과 관련한 내용들은 세손의 청으로 인해 세초<ref>세초(洗草)란 초초와 중초를 기록한 종이들을 아예 물에 씻어서 새 종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ref>되었다.<ref>영조 127권, 52년(1776년) 2월 4일 3번째기사 / 영조 127권, 52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2월 6일(무신) 2번째기사</ref> 그리고 [[1888년]]([[조선 고종|고종]] 25년)에 또다시 화재로 [[1851년]]([[조선 철종|철종]] 2년)에서 [[1888년]](고종 25년)까지의 일기 361책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개수했다. 그밖에 수많은 분실과 화재를 당하고 개수하기를 반복하였고, 개수 때 원본의 내용을 어느 정도 고친 것인지 알 수 없다. == 평가 == 이 책은 당시의 공적 기록인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과 더불어 드물게 존재하는 조선시대 국정의 결과에 대한 1차 사료로 그 가치는 실록을 능가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같이 보기 == * [[조선왕조실록]] * [[비변사 등록]] * [[일성록]] == 각주 == <references/> == 외부 링크 == {{위키문헌|승정원일기}} * [http://sjw.history.go.kr/ 승정원일기] - 승정원일기의 일부를 검색할 수 있다.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3030000,11&flag=Y 승정원일기 설명] - 문화재청 {{글로벌세계대백과|제목=〈제도의 변화〉 }}{{대한민국의 국보| 국보 제301호 - 제400호 }}{{한반도의 세계기록유산}}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세계기록유산]] [[분류:서울특별시의 국보]] [[분류:조선의 일기]] [[분류:조선의 역사책]] [[분류:규장각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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