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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광음동 분청사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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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이름 = 안동광음동분청사기요지<br />(安東光音洞粉靑砂器窯址) | 그림 = 안동 광음동 분청사기요지2.jpg | 그림크기 =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북도]] | 유형 =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기념물]] | 번호 = 28 | 지정 = [[1979년]] [[12월 18일]] | 해지 =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산57번지 | 시대 = | 관리 = 서정봉 | 참고 = | 면적 = 1,485m<sup>2</sup> | 수량 =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 띄움 = | 꼬리표 =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위도도 = | 경도도 =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23,00280000,37 }} '''안동 광음동 분청사기요지'''(安東 光音洞 粉靑砂器窯址)는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분청사기]] [[요지]]이다. 1979년 12월 18일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광음리 야산의 남쪽 기슭에 있으며 조선 전기 분청인화문 상감사기를 굽던 곳이다. 선조 41년(1608)에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는 광음 흙항아리의 생산지가 안동관아에서 25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릇은 화려하고 색은 붉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마터에는 당시 사용했던 백토원료가 남아있으며, 버려진 사기조각은 조그마한 언덕을 이루고 있다. 광음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우리나라 도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곳이다. == 참고 문헌 == * {{문화재청 문화재|23,00280000,37|안동광음동분청사기요지}}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경상북도의 기념물]] [[분류:안동시의 문화유산|광음동 분청사기요지]] [[분류:분청사기 요지]]
안동 광음동 분청사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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