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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묵'''(梁弘默, [[1866년]] ~ ?)은 [[대한제국]] 시기의 개화파 지식인이며, [[일제강점기]] 초기의 관료이다. 한자 이름이 양홍묵(梁鴻默)으로 기록된 곳도 있다. == 생애 == 본관은 [[제주 양씨|제주]]이다. [[서재필]]이 [[1896년]]에 [[배재학당]]을 중심으로 조직한 [[협성회]]에서 활동하면서 개화 운동을 벌였다. 협성회 기관지인 《협성회회보》 발간을 전담하였고, 협성회가 [[독립협회]]로 발전할 때도 가담하였다. 독립협회가 탄압을 받자 [[이승만]]과 함께 경무청을 방문하여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고 연설을 하는 등, 독립협회 탄압에 대해 반발했다. [[1898년]]에는 이승만 등과 함께 《협성회회보》를 발전시켜 [[한글]] 신문 《[[매일신문 (대한제국)|매일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을 맡았다. 양홍묵은 이때 배재학당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후 관계로 진출하였다. [[1907년]]에 [[경상남도]] [[김해군]] 군수를 맡고 있었는데, [[3월 19일]]에 김해군민들이 양홍묵의 증세 정책을 규탄하며 폭동을 일으킨 일이 있다.<ref>{{서적 인용 |저자=정진석 |제목=역사와 언론인 |날짜=2001-03-01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위치=서울 |ISBN=8984990280 |쪽=30쪽}}</ref>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전인 [[1908년]]에 [[경상북도]] [[청도군]] 군수로 임명되었다. [[1910년]]에 한일 병합으로 [[조선총독부]] 체제가 출범하면서 [[경주군]] 군수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1912년]]에 [[한국병합기념장]]을 수여받았다. [[1916년]]부터는 경상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겸임했다. [[1919년]]까지 경주군수로 재직 중이었고,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같이 보기 == * [[매일신문]]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1866_1_0007111|양홍묵|梁鴻默}} == 각주 == <references/>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866년 출생]] [[분류:몰년 미상]] [[분류:개화파]] [[분류:대한제국의 언론인]] [[분류:대한제국의 관료]] [[분류:일제강점기의 관료]]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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