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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 넘어옴|예허나라}} '''여허나라 할라'''(葉赫那拉氏,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ᠶᡝᡥᡝ<br />ᠨᠠᡵᠠ<br />ᡥᠠᠯᠠ}}|Yehe Nara Hala}})는 [[만주족]] [[나라 할라]]의 지파로 [[해서여진]] [[여허]]부(部)의 성씨였다. [[파일:Yu Zhiding's portrait of Nalan Xingde cropped.jpg|섬네일|[[강희제]]의 측근이었던 사인(詞人) [[나라 싱더]](納蘭性德)]] 그 시조는 16세기 후반 [[투메드]] 몽골의 귀족인 싱건 다르한({{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ᠰᡳᠩᡤᡝᠨ<br>ᡩᠠᡵᡥᠠᠨ}}|Singgen Darhan}})으로, 이후 그의 후손들은 [[후룬]] 인근의 나라 씨족의 부락 정복한 뒤 자신의 하라를 [[튀메드|투머트]]({{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ᡨᡠᠮᡝᡨ}}|Tumet}})에서 나라({{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ᠨᠠᡵᠠ}}|Nara}})로 개성하고, 강명을 연고로 여허(葉赫,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ᠶᡝᡥᡝ}}|Yehe}})라는 무쿤을 더하여 '''여허나라'''(葉赫那拉,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ᠶᡝᡥᡝ<br />ᠨᠠᡵᠠ}}|Yehe Nara}})라 일컬었다.<ref>{{서적 인용|last=弘昼等|title=八旗满洲氏族通谱|publisher=辽海出版社|year=2002|isbn=9787806691892|page=280}}</ref> [[파일:The Imperial Portrait of the Ci-Xi Imperial Dowager Empress.PNG|섬네일|right|[[청 제국]]의 권력자였던 [[서태후|효흠현황후]](孝欽顯皇后, {{llang|mnc|{{MongolUnicode|ᡥᡳᠶᠣᠣᡧᡠᠩᡤᠠ<br />ᡤᡳᠩᡤᡠᠵᡳ<br />ᡳᠯᡝᡨᡠ<br />ᡥᡡᠸᠠᠩᡥᡝᠣ}}|Hiyoošungga Gingguji Iletu Hūwangheo}}) 여허나라씨]] [[누르하치]]의 본래 세력 기반인 [[건주여진]]의 니루({{llang|mnc|{{MongolUnicode|ᠨ᠋ᡳᡵᡠ}}|Niru}}) 편성을 대체로 기존 조직을 기반으로 했고, 니루의 규모도 다른 [[여진족]]보다 컸다. 그러나 정복 전쟁에서 저항이 심했던 [[해서여진]]은 이와 달랐다. 누르하치는 복속된 해서여진을 대대적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해서여진이 자신들만의 니루를 구성하는 것을 경계했다. 자발적으로 누르가치를 따르거나 과거의 친교관계를 유지해 온 소수의 해서여진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조각조각 분리되어 건주여진 니루에 배속되었다.<ref name="Lee"/> 누르하치는 이런 방식으로 [[팔기제|팔기]]를 조직함으로써 통일된 [[여진족]]의 결합력을 강화하고 [[반란]] 가능성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팔기만으로 통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해서여진의 경우, 불만이 지속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12년]] [[청 제국]]이 멸망한 후에 민간에서는 누르하치에게 정복당한 [[여허]]의 후손인 [[서태후]]가 청 제국 복수해서 청 제국이 망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이를 보면 건주여진에 대한 해서여진의 반감이 청대 내내 잠재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f name="Lee">{{서적 인용|author=이훈|authorlink=|title=만주족 이야기|series=|publisher=너머북스|year=2018|isbn=9788994606514|page=}}</ref><ref group="주해">그러나 [[서태후]]와 그 일족의 실제 조상은 예허의 국주였던 긴타이시의 아들 덜거르({{llang|mnc|{{MongolUnicode|ᡩᡝᠯᡤᡝᡵ}}|Delger}})가 아닌 예허의 지배를 받던 [[:zh:双阳区|수완]]({{llang|mnc|{{MongolUnicode|ᠰᡠᠸᠠᠨ}}|Suwan}}) 지역의 수완 나라씨였다. 그 중 카샨(喀山, ({{llang|mnc|{{MongolUnicode|ᡴᠠᡧᠠᠨ}}|Kašan}})이라는 인물은 1619년 누르가치에게 귀부하여 양남기에 배속되었다.</ref> [[신해혁명]]으로 무능하고, 부패가 절정인 봉건전제의 [[청 제국]]이 와해되었지만, 진정한 공화정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군벌의 통치가 뒤를 이었으며 민족 차별 정책이 수반되었다. 전국 각지의 주방팔기(駐防八旗)들은 예를 들어 [[서안]]·[[남경]]·[[항주]]·[[형주]] 등지에서 무고한 [[만주족]] 관병을 살해하는 사건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이에 따라 만주족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한족]](漢族)의 성씨로 바꾸는 것이 적지 않았다. 만주족이 많은 북경지역에서는 소수의 달관 · 현귀이기 때문에 족속과 성씨를 바꿀 방법이 없는 사람 이외에 일반적으로 만주인들은 족속과 성씨를 바꾸는 숫자가 적지 않았으며, 그렇지 않는다면 입에 풀질하고 살 방도조차 찾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직장이나 일자리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ref>金啓孮,《滿族歷史與文化簡編》, 327쪽</ref> 따라서 [[중화민국]]이 건립되자 예허나라씨는 한성(漢姓)인 나(那), 엽(葉), 장(張), 나(羅), 소(蘇)로 가장했다.<ref>{{서적 인용|last=赵力|title=《满族姓氏寻根词典》|publisher=辽宁民族出版社|year=2012|isbn=9787549702862|page=406}}</ref> == 각주 == <references /> <references group="주해"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여허나라 할라|ᠶᡝᡥᡝ ᠨᠠᡵᠠ]] [[분류:해서여진]] [[분류:청나라의 귀족]] [[분류:만주족]] [[분류:여진]] [[분류:훌룬 구룬]] [[분류: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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