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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필요|날짜=2024-07-25}} {{오스트리아 제국 표}} {{오스트리아의 역사}} '''오스트리아 제국'''({{llang|de|Kaiserthum Österreich|카이저르툼 외스터라이히}})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1제국]]을 선포하자 이에 맞서 [[프란츠 2세]]가 1804년 [[신성 로마 제국]] 내의 합스부르크가 영지를 통합하면서 선포한 제국이다.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국이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군주국이었으며, 영토 면에서도 [[러시아 제국]]과 [[프랑스 제1제국]]에 이어 세번째로 큰 [[제국]]에 해당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경우 제국 내 독립국으로서 나머지 지역과는 별도로 자체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패배한 뒤 [[1867년]]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이 이루어지며 헝가리 왕국과 오스트리아 왕국이 공동군주국으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 역사 == === 성립 ===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 제국]] 성립을 선포하자, 이에 대항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중심으로 신성 로마 제국 영역 안의 자신의 영지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영지까지 포함한 지역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승격시킨다. 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1세로 즉위한다. [[1805년]]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대파한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 내 대부분의 소국을 복속시켜 [[라인동맹]]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황제는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독일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이중황제(Doppellkaiser)가 된다. [[1809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수도 [[빈]]까지 점령당한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에 굴복하여, [[1810년]]에는 프란츠 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가 나폴레옹과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1813년]] 오스트리아는 다시 프랑스와 싸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프랑스군을 독일 지역에서 몰아냈다. [[1814년]] [[파리 (프랑스)|파리]]를 점령하였고, 나폴레옹의 제국은 붕괴된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1814년]]부터 [[1815년]]까지 열린 [[빈 회의]]를 이끌며 [[롬바르디아]], [[티롤]], [[달마티아]], [[베네치아]] 등의 영토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독일 내 여러 군소 국가들의 맹주이자 유럽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시 확인했다. === 민족주의의 소용돌이 === [[파일:Axmann-Kupferstich.jpg|150px|left|섬네일|[[프란츠 2세]].]] 오스트리아 제국은 나폴레옹에 대항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유산으로서 전 유럽으로 확산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막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빈 체제]]를 주도하며 보수적 구체제로의 복원을 시도하였고, [[1820년대]] 이후 각종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상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합스부르크 왕가]]가 소유한 영토의 집합에 불과했던 다민족국가 오스트리아의 결속력은 약했고, 제국 내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퍼지면서 여러 민족들의 독립운동이 격화되자 오스트리아 제국은 내부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놓인다. === 1848년 혁명 === 민족주의의 바람이 제국 전역을 휩쓸면서 각 민족의 분리 요구는 거세졌고, 다민족 국가인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탈리아와 독일 지역에서 축출된 후 동쪽 지역의 발전을 모색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인들과 타협을 하게 됐다. [[헝가리]]인들은 [[1840년]]부터 자치를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한때 [[러시아 제국|러시아]]가 헝가리인들의 반란을 진압한 바 있었으나 오히려 헝가리인의 단결만 낳았다. [[1848년]] 프랑스에서 [[프랑스 2월 혁명|2월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리프]]의 제정이 전복되자, 그 여파로 오스트리아에서도 자유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3월부터 빈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황제의 무능함과 보수적 정치체제에 반발하여 소요 사태가 발생했고, 그 결과 수상 [[메테르니히]]가 실각하고 황제 [[페르디난트 1세 (오스트리아)|페르디난트 1세]]도 퇴위한다. 새로운 황제로 페르디난트 1세의 조카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즉위하였다. [[파일:A második komáromi csatA 1849. július 2.jpg|왼쪽|섬네일|1849년 [[1848년 헝가리 혁명|헝가리 혁명]]의 [[코마롬]] 전투]] 이후 [[1848년]] 3월부터 [[1849년]] 11월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은 [[1848년 혁명|빈체제 대항 혁명]]에 직면하였다. 각 반군은 [[민족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세력 역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오랜 [[보수주의]] 체제에 저항하였다. 이들 중 대다수는 실패로 끝났으나 제국의 개혁을 이끌어내어, [[농노제]]를 폐지하고 검열을 철폐하며, 제국 전역에 헌법을 시행하겠다는 [[페르디난트 1세 (오스트리아)|페르디난트 1세]] 황제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 이중제국으로의 전환 === [[1861년]]에는 [[2월 칙허]]로도 불리우는 1861년 헌법이 제정되어, [[상원]] 성격의 귀족원 (Herrenhaus)과 [[하원]] 성격의 대의원 (Abgeordnetenhaus)를 개원하여 민중의 불만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국 내 대다수 민족들은 여전히 제국통치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britannica.com/topic/February-Patent|title=February Patent {{!}} Austrian history {{!}} Britannica|website=www.britannica.com|language=en|access-date=2024-05-28}}</ref> 외부적으로도 민족주의의 확산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운동을 자극함으로써,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사르데냐 왕국]]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이탈리아 지역에서의 기존 지배력을 잃은데 이어, 독일의 맹주 자리를 놓고 1866년 벌인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도 패배한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 이후 독일의 중심 국가로서의 역할을 했던 오스트리아가 독일 제국의 범위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독일 통일 과정에서 프로이센과 이탈리아가 동맹을 맺으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은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토주]] 지역을 [[이탈리아 왕국|신생 이탈리아 통일왕국]]에게 상실하게 된다. [[1864년]] [[덴마크 왕국|덴마크]]와의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은 [[홀슈타인]]을 새 영토로 획득하였고, [[슐레스비히]]와 라우엔부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내정 문제는 계속되고 있었다.<ref>Mueller 1961, p. H6.</ref> 오스트리아 제국 17주에서는 중앙의회를 대신하여 자체 의회를 설치하였으며, [[헝가리인]]들은 계속해서 자치권에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패배 후인 [[1867년]] [[5월 29일]],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헝가리의 귀족들과 [[아우스글라이히|타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 왕국과 헝가리 왕국은 별개의 실체로서 동등한 국격으로 합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군주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 정치 == === 군주 === [[파일:Austrian imperial crown dsc02787.jpg|150px|섬네일|오스트리아 황제의 관]] [[전제군주제]]를 채택했다. 이후 [[아우스글라이히|대타협]]<ref>'''아우스글라이히'''로 불리기도 한다.</ref>때 이중제국으로 바뀌게 되면서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역대 [[오스트리아 황제|카이저]] (황제) 목록이다. * [[1804년]] - [[1835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프란츠 1세]] (1768-1835) * [[1835년]] - [[1848년]] [[페르디난트 1세 (오스트리아)|페르디난트 1세]] (1793-1875) * [[1848년]] - [[1916년]] [[프란츠 요제프 1세]] (1830-1916) ** [[1867년]]부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역대 카이저|오스트리아-헝가리]]의 카이저 === 국가와 국기 === {{본문|황제 찬가}} 국가는 [[하이든]]이 프란츠 카이저에게 헌상한 "하느님, 프란츠 카이저를 지켜 주소서"이다. 여기서 프란츠는 신성 로마 제국의 [[프란츠 2세]], 다시 말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프란츠 1세]]를 가리킨다. 가사는 1835년, 1836년, 1848년, 1853년에 개정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가는 1853년 당시의 가사를 사용했다. 국기의 경우 [[15세기]] [[합스부르크가]]가 [[신성로마황제]]로 등극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흑색과 금색의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국기|합스부르크 상징기]]를 사용하였으며 1804년 공식 채택되어 1918년까지 사용하였다. 이밖에도 아래와 같은 국기가 사용되었다.<gallery class="center" heights="150" widths="150"> 파일:Imperial Standard of the Austrian Empire (1815-1866).svg|간소화된 국장을 사용한 오스트리아 황제기.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파일:Austrian Imperial Standard - Infantry pattern mix early 19th century.svg|세부화된 국장을 사용한 오스트리아 황제기.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파일:Austria-Hungary-flag-1869-1914-naval-1786-1869-merchant.svg|1786년부터 1869년까지 상선기, 1786년부터 1915년까지 해군기 및 전시기로 사용된 국기 </gallery> == 영토 == [[파일:Kaiserreich_Österreich_bis_1867,_Karte_von_1871.png|섬네일|1866년~1867년의 오스트리아 제국]] [[파일:Ethnographic_map_of_austrian_monarchy_czoernig_1855.jpg|섬네일|185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민족 구성]] 다음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왕령지이다. 1815년 [[빈 회의]] 이후 [[1848년 혁명]]과 1860년 [[10월 칙령]]에 따른 지방정부 개편까지 모두 포함하였다. * [[오스트리아 대공국]]({{lang|de|Erzherzogtum Österreich}}) ** [[니더외스터라이히주|하오스트리아 대공국]]({{lang|de|Erzherzogtum Österreich unter der Enns}}) ** [[오버외스터라이히주|상오스트리아 대공국]]({{lang|de|Erzherzogtum Österreich ob der Enns}}) * [[잘츠부르크 공국]]({{lang|de|Herzogtum Salzburg}}), 1815년~1850년 하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잘차흐강|잘차흐]]구역 (Salzachkreis) * [[슈타이어마르크 공국]]({{lang|de|Herzogtum Steiermark}}) * [[티롤 후백국]]과 [[포어아를베르크주|포어아를베르크]]({{lang|de|Gefürstete Grafschaft Tirol mit dem Lande Vorarlberg}}), 1861년 분할 * [[일리리아 왕국]]({{lang|de|Königreich Illyrien}}), 1849년/1850년 분할 ** [[케른텐 공국]]({{lang|de|Herzogtum Kärnten}}) ** [[카르니올라 공국]]({{lang|de|Herzogtum Krain}}) ** [[오스트리아 연안 지대|연안 지대]]({{lang|de|Küstenland}}) ***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후백국]]({{lang|de|Gefürstete Grafschaft Görz und Gradisca}}) *** [[트리에스테 제국자유시]]({{lang|de|Triest}}) *** [[이스트리엔 변경]]({{lang|de|Markgrafschaft Istrien}}) * [[보헤미아 왕관령]] ** [[보헤미아 왕국]]({{lang|de|Königreich Böhmen}}) ** [[모라바 변경백국]]({{lang|de|Markgrafschaft Mähren}}) **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실레시아 공국]]({{lang|de|Herzogtum Schlesien}}) *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lang|de|Königreich Galizien und Lodomerien}}) with ** [[부코비나 공국]]({{lang|de|Herzogtum Bukowina}}), 1850년 분할 * [[달마티아 왕국]]({{lang|de|Königreich Dalmatien}}) * [[헝가리 왕국]]({{lang|de|Königreich Ungarn}}) ** [[크로아티아 왕국 (합스부르크가)|크로아티아 왕국]]({{lang|de|Königreich Kroatien}}) ** [[슬라보니아 왕국]]({{lang|de|Königreich Slawonien}}) ** [[피우메시 권역]]({{lang|de|Stadt Fiume mit Gebiet}}), 1779년 헝가리 왕국으로부터 별개구역으로 분할, 1809년 [[프랑스 제1제국]]기 [[일리리아주]], 이후 [[일리리아 왕국]]으로 존속하다 1822년 헝가리 왕국에 소속, 1849년 크로아티아 왕국으로 이전 * [[롬바르디아 베네치아 왕국]]({{lang|de|Lombardo-Venezianisches Königreich}}), 1859년/1866년 상실 * [[트란실바니아 대공국]]({{lang|de|Großfürstentum Siebenbürgen}}) * [[세르비아 티미슈 공국]]({{lang|de|Woiwodschaft Serbien und Temescher Banat}}), 1849년 신설, 1860년 헝가리 왕국과 슬라보니아에 통합 ** [[세르비아 보이보디나]], 1848년~1849년 사실상의 개별국이나 공식 승인받지 못함 ** [[테메슈바르 바나트]] ([[바나트]]) * [[군정국경지대]]({{lang|de|Militärgrenze}}) ** [[크로아티아 군정국경지대]]({{lang|de|Kroatische Militärgrenze}}) ** [[슬라보니아 군정국경지대]]({{lang|de|Slawonische Militärgrenze}}) ** [[바나트 군정국경지대]]({{lang|de|Banater Militärgrenze}}) ** [[트란실바니아 군정국경지대]]({{lang|de|Siebenbürger Militärgrenze}}), 1853년 트란실바니아에 합병 합스부르크 왕가의 옛 영토였던 [[포르더외스터라이히|외스터라이히]]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스위스)는 이미 1805년 프레스부르크 평화조약으로 영토에서 상실되었다. 1850년부터 [[크로아티아 왕국 (합스부르크가)|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왕국|슬라보니아]], [[군정국경지대]]는 별개의 지방군사행정과 대표를 둔 단일 영토를 이루었다.<ref>{{웹 인용|url=https://hr.wikisource.org/wiki/Najnovije_doba_hrvatske_povjesti_(R._Horvat)/Prelom_s_Ugarskom|제목=Najnovije doba hrvatske povjesti (R. Horvat)/Prelom s Ugarskom – Wikizvor|웹사이트=hr.wikisource.org|확인날짜=15 June 2019}}</ref>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트란실바니아, 롬바르디아베네치아, 군정국경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는 [[크라이제]] (Kreise, [[관구]])로 불리는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다. 크라이제는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통치기에 도입된 행정 구역이다. [[1848년 혁명]] 이후 크라이제 외에 또다른 근대적 행정구역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얼마가지 못했다.<ref>Gesetz vom 26. Juni 1849, RGBl. 295/1849: {{웹 인용|url=https://alex.onb.ac.at/cgi-content/alex?apm=0&aid=rgb&datum=18490000&page=595|제목=Kaiserliche Entschließung vom 26. Juni 1849, wodurch die Grunzüge für die Organisation der Politischen Verwaltungs-Behörden genehmiget werden|날짜=1849-06-26|웹사이트=ÖNB-ALEX – Historische Rechts- und Gesetztexte Online|언어=de|확인날짜=2023-07-05}}</ref> 다만 1853년~1854년 [[알렉산데르 폰 바흐 공작]]의 개혁으로 크라이제 체계를 '암츠베르처크' (Amtsberzirke)라 부르는 세부구역으로 대체하여 1867년까지 유지되기도 하였다.<ref>Gesetz vom 19. Jänner 1853, RGBl. 10/1853: {{웹 인용|url=https://alex.onb.ac.at/cgi-content/alex?aid=rgb&datum=1853&page=165|제목=Verordnung der Minister des Inneren, der Justiz und der Finanzen vom 19. Jänner 1853, womit die Allerhöchsten Entschließungen über die Einrichtung und Amtswirksamkeit der Bezirksämter, Kreisbehörden und Statthaltereien, über die Einrichtung der Gerichtsstellen und das Schema der systemisirten Gehalte und Diätenclassen, sowie über die Ausführung der Organisirung für die Kronländer Oesterreich ob und unter der Enns, Böhmen, Mähren, Schlesien, Galizien und Lodomerien mit Krakau, Bukowina, Salzburg, Tirol mit Vorarlberg, Steiermark, Kärnthen, Krain, Görz, Gradiska und Istrien mit Triest, Dalmatien, Kroatien und Slawonien, Siebenbürgen, die serbische Wojwodschaft mit dem Banate, kundgemacht werden.|날짜=1853-01-19|웹사이트=ÖNB-ALEX – Historische Rechts- und Gesetztexte Online|언어=de|확인날짜=2023-07-05}}</ref> 1848년 혁명 이후 개혁 과정에서 1851년 트란실바니아에 크라이제가 도입되었으며,<ref>{{웹 인용|url=https://alex.onb.ac.at/cgi-content/alex?aid=rgb&datum=1851&page=443&size=45|제목=Verordnung des Ministeriums des Inneren vom 12. Mai 1851, wodurch in Folge Allerhöchster Entschließung vom 12. Mai 1851 die Organisirung politischen Verwaltung im Großfürstenthume Siebenbürgen kundgemacht wird.|날짜=1851-05-12|웹사이트=Reichs-Gesetz-Blatt für das Kaiserthum Österreich|언어=de|확인날짜=2023-07-05}}</ref> 세르비아주와 테메슈바르 바나트도 크라이제로 분할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alex.onb.ac.at/cgi-content/alex?aid=rgb&datum=1854&page=261&size=45|제목=Verordnung der Minister des Inneren, der Justiz und der Finanzen vom 1. Februar 1854, betreffend die politische und gerichtliche Organisirung der serbischen Woiwodschaft und des Temeser Banates.|날짜=1854-02-01|웹사이트=Reichs-Gesetz-Blatt für das Kaiserthum Österreich|언어=de|확인날짜=2023-07-05}}</ref> == 문화 == 1804년부터 1867년까지의 기간은 나폴레옹 이후 근대 유럽 세계가 형성되던 격변의 시기였지만, 문화적으로 찬란한 유산을 남긴 시기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 [[빈]]에서는 [[슈베르트]]와 [[체르니]]와 같은 작곡가가 활동 중이었고, 독일의 [[베토벤]] 역시 빈으로 옮겨와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도 이 시기 오스트리아 제국 출신이며,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역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활동했다. 문학에서는 [[프란츠 그릴파르처]]가 이 시기의 대표적 극작가이다. 한편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했으며, [[크리스티안 도플러]]는 [[도플러 효과]]를 발견했다. == 같이 보기 == {{위키공용분류}} * [[합스부르크 군주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각주 == {{각주}} {{독일 연방의 구성국}}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오스트리아의 역사]] [[분류:헝가리의 역사]] [[분류:크로아티아의 역사]] [[분류:슬로베니아의 역사]] [[분류:슬로바키아의 역사]] [[분류:이탈리아의 역사]] [[분류:세르비아의 역사]] [[분류:체코의 역사]] [[분류:루마니아의 역사]] [[분류:유럽의 옛 나라]] [[분류:발칸반도의 옛 나라]] [[분류:이탈리아반도의 옛 나라]] [[분류:오스트리아 제국| ]] [[분류:독일 연방 가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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