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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록'''(尹滋祿)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 생애 == 대한제국 말기인 [[1905년]] 6월에 [[탁지부]]에서 토지 측량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한 측량강습생 제도에 따라 강습생으로 채용되어 약 5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판임관 8급의 탁지부 기수로 임용되어 관계에 들어섰다. [[1906년]]에는 판임관 7급의 [[한성부]] 기수로 전임 발령을 받았다.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한성부 기수로 근무했다. 이때 품계는 6품이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조선총독부]] 체제가 들어선 뒤 [[충청남도]] [[회덕군]] 서기로 발령받으며 총독부 소속 관리가 되었다. 이후 함경남도 [[함흥군]] 서기를 지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도 수여받았다. 함흥군 서기를 지내던 중 [[갑산군]] 군수로 발탁되어 총독부 군수가 되었다. 갑산군수를 끝으로 [[1921년]]에 퇴관하여 총독부 군수를 지낸 기간은 2년이 채 못된다. 퇴직 당시 정8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퇴관 후에는 향리로 돌아가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인 양주군 별내면에서 면장을 역임하였다. [[1933년]]까지 별내면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종7위 훈8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같이 보기 ==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 관료]]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01708|윤자록|尹滋祿}}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대한제국의 관료]] [[분류:일제강점기의 관료]]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파평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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