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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국 (18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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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국'''(李源國, [[1861년]] [[1월 13일]] ~ ?)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 겸 법조인이다. == 생애 == 본관은 [[용인 이씨|용인]]이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지역에서 무관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한학을 수학하고 [[1891년]]에 [[조선의 과거 제도|무과]]에 급제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뒤 잠시 무관 벼슬을 지내던 중, [[1895년]] 6월에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법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약 9개월 동안의 과정을 마치고 [[1896년]] 3월에 법관양성소를 졸업하였다. [[1898년]]에 판임관 6등으로 [[한성재판소]] 주사에 임명되면서 법률 전문 관리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법부]] 주사로 이동하였고, [[1901년]]에 [[평리원]] 주사로 발령받았다. [[1903년]]에는 모교인 법관양성소에서 교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06년]]부터 한성재판소의 판사와 공주지방재판소 판사 등을 지냈다. 품계는 공주지방재판소 판사로 있던 [[1908년]]을 기준으로 6품이었다.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이동하였다. 초기에는 그대로 공주지방재판소 판사로 남아 있었으며, [[1912년]] 5월에 [[충청남도]] [[비인군]] 군수로 발령받았다. [[1914년]] 초에 대한제국 출신 관리들을 대거 퇴관하도록 했을 때 면직되어, 총독부 군수로 오래 근무하지는 않았다. 비인군수로 재직 중이던 [[1912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수여 받았고, 퇴관 당시 정7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1928년]]에 [[쇼와 천황]] 즉위 기념으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과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03393|이원국|李源國}}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861년 출생]] [[분류:몰년 미상]] [[분류:20세기 한국 사람]] [[분류:과거 급제자]] [[분류:조선의 무신]] [[분류:대한제국의 관료]] [[분류:대한제국의 법조인]] [[분류:일제강점기의 법조인]]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분류:19세기 한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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