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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잉글랜드|927년에서 1707년까지 존속하였던 잉글랜드 왕국|영국의 지방}} {{잉글랜드 왕국 표}} {{브리튼 제도의 역사}} '''잉글랜드 왕국'''({{lang|en|Kingdom of England}}, {{llang|ang|Engla rīce}})은 여러 앵글로색슨 왕국들이 통합된 10세기 초부터 1707년 5월 1일까지 [[스코틀랜드 왕국]]과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형성하기 전까지, [[그레이트브리튼섬]]에 있던 주권 국가였다. 두 왕국이 통합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은 이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중세]]와 [[근세]] 동안 잉글랜드 왕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다. 886년{{Sfn|Keynes|1998|p=23-24}}, [[앨프레드 대왕]]은 덴마크 [[바이킹]]으로부터 [[런던]]을 재점령하였고, 이 사건 이후 그는 자신을 [[앵글로색슨인의 왕]]으로 선포하였으며, 899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10세기 초에 앨프레드의 후손들인 [[장형왕 에드워드]](899-924 재위)와 [[애설스탠]](924-939 재위)는 다양한 앵글로색슨 왕국들이 통합하였고 이 결과 잉글랜드 왕국이 형성되었다. 927년, 애설스탠은 마지막으로 남은 바이킹 왕국 [[요르비크]]를 정복하며 잉글랜드 전역을 통치하는 최초의 앵글로색슨 지배자가 되었다. 1016년, 잉글랜드 왕국은 [[덴마크]]와 [[노레그 왕국|노르웨이]]와 [[동군연합]]을 이루고 [[크누트 대왕]]의 [[북해 제국]]의 일원이 되었다. 1066년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으로 인해 잉글랜드의 수도와 주요 왕실 거처가 [[윈체스터]]에서 [[웨스트민스터]]로 이전되었으며, [[시티오브런던|런던]]은 빠르게 잉글랜드 최대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잡았다.<ref>[https://books.google.com/books?id=bkGpFhiPtIEC&dq=History%20of%20London&pg=PA363 ''London, 800–1216: The Shaping of a City''], "''...rivalry between City and government, between a commercial capital in the City and the political capital of quite a different empire in Westminster.''", accessed November 2013.</ref>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잉글랜드 왕국의 역사는 관례적으로 연속적인 왕조들에 따라 구분된다: [[중세 성기 영국|노르만/앙주 왕조]] (1066-1216), [[중세 후기 영국|플랜태저넷 왕조]] (1216-1485), 튜더 왕조 (1485-1603), 그리고 스튜어트 왕조 (1603-1707) (1649-1660년의 공위기간으로 인해 잠시 중단됨). 1066년 이후 모든 잉글랜드 군주는 궁극적으로 노르만인의 후손이며, 플랜태저넷 왕조의 구분은 관례적인 것이다. 이는 [[헨리 2세]](1154-1189 재위)부터 앙주 왕조의 왕들이 "더욱 잉글랜드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랭커스터가]]와 [[요크가]]는 모두 플랜태저넷의 방계 가문이고, [[튜더가]]는 [[존 뷰포트]]를 내세워 [[에드워드 3세]]의 후손임을 주장했으며, [[스튜어트가]]의 [[제임스 1세 (잉글랜드)|제임스 1세]]는 [[마거릿 튜더]]를 내세워 [[헨리 7세]]의 후손임을 주장했다. 1284년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정복하면서 [[웨일스]]는 잉글랜드 왕실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에드워드 3세]](1327-1377 재위)는 잉글랜드 왕국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강국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으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중요한 입법 및 정부 개혁, 특히 [[잉글랜드 의회]]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1340년대부터 잉글랜드는 [[프랑스 왕국|프랑스 왕위]]에 대해 명목상으로만 주장을 유지했으나, [[백년 전쟁]]과 1455년에 발발한 [[장미 전쟁]] 이후 잉글랜드는 더 이상 프랑스 왕위에 대한 주장을 추구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대륙에 있던 영토는 [[칼레]]를 제외하고 모두 상실하였다. 장미 전쟁의 혼란 직후, 튜더 왕조는 [[잉글랜드 르네상스]] 시기를 이끌며 잉글랜드의 왕권을 잉글랜드 본토 너머로 다시 확장하였고, [[1535년 및 1542년 웨일스법]] 제정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스 공국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어냈다. [[헨리 8세]]는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을 총괄했으며,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재위)는 [[엘리자베스 종교 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잉글랜드를 [[강대국]]으로 만들고 [[잉글랜드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을 통해 [[대영제국]]의 기초를 마련했다. 1603년 제임스 1세의 즉위로 인해 왕좌의 연합이 이루어졌으며, 스튜어트 왕조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스튜어트 왕조 하에서 잉글랜드는 [[잉글랜드 내전|내전]]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1649년 [[찰스 1세]]의 처형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1660년 군주제가 [[잉글랜드 왕정복고|복원]]되었지만, 내전은 잉글랜드 군주가 의회의 동의 없이는 통치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 개념은 1688년 [[명예혁명]]의 일환으로 법적으로 확립되었다. 이 시점부터 잉글랜드 왕국과 그 후속 국가인 영국은 실질적으로 [[입헌군주제]]로 기능하게 되었다.{{efn|[[영국의 헌법]]은 [[성문 헌법|성문화되지 않은]] 헌법이다.}} 1707년 5월 1일, [[1707년 연합법]]의 조건에 따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의회, 즉 두 왕국은 상호적으로 폐지되었고, 그 자산과 영토는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이름의 왕국'으로 영원히 통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의회]]를 형성하였다.<ref>"[http://www.parliament.uk/about/living-heritage/evolutionofparliament/legislativescrutiny/ Acts of Union 1707]", UK Parliament, accessed 27 January 2011.</ref><ref>{{웹 인용|url-status=dead |url=http://www.scottish.parliament.uk/vli/visitingHolyrood/union_exhibition.pdf |title=Making the Act of Union 1707 |website=Scottish Parliament |access-date=27 January 2011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11140052/http://www.scottish.parliament.uk/vli/visitingHolyrood/union_exhibition.pdf |archive-date=11 May 2011 }}</ref> == 참고 자료 == === 출처 === {{각주}} === 내용주 === {{내용주}} {{서양 중세사}} {{잉글랜드의 군주}}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잉글랜드 왕국| ]] [[분류:잉글랜드의 역사]] [[분류:브리튼 제도의 옛 나라]] [[분류:유럽의 옛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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