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요즘 화제
임의의 문서로
sitesupport
사용자 모임
사랑방
사용자 모임
관리 요청
편집 안내
소개
도움말
정책과 지침
질문방
한울위키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장기 척화비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장기 척화비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일반 사용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정보 | 이름 = 장기 척화비<br />(長鬐 斥和碑) | 그림 = 장기_척화비.jpg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북도]] | 유형 =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01호 ~ 제300호)#제201호 ~ 제300호|문화재자료]] | 번호 = 224 | 지정 = [[1990년]] [[8월 7일]] | 해지 = |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포항시)|남구]] [[장기면]] 읍내리 107번지 | 시대 = | 소유 = | 참고 = | 면적 = | 수량 = 1기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장기 척화비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5|53|45|N|129|29|30|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31,02240000,37 }} '''장기 척화비'''(長鬐 斥和碑)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포항시)|남구]] [[장기면]], 장기읍사무소 정원에 있는 [[척화비]]이다.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더욱 강력히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의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비는 반듯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며, 비몸의 네 모서리와 윗변의 양끝을 단정히 다듬어 놓았다. 앞면에는 비문을 새겨 두었는데 내용에는 "서양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는 강한 어투의 경고를 적고 있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이후 같은 해에 일제히 세운 것으로,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되면서 대부분의 척화비들은 철거되고, 이처럼 몇 기의 비들만이 곳곳에 남아 옛 역사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원래는 장기읍성 안에 있었으나, 장기면사무소 정문 좌측 도로변에 옮겨졌다가 1990년 2월1일 현재 위치로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척화비는 높이 120cm, 폭 45cm, 두께 21cm이다.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31,02240000,37|장기척화비}}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토막글|문화유산}} [[분류:경상북도의 문화유산자료]] [[분류:포항시의 문화유산]] [[분류:척화비]] [[분류:1871년 작품]]
장기 척화비
문서로 돌아갑니다.
검색
검색
장기 척화비 문서 원본 보기
새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