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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황후 황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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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정보 | 소재_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중요민속자료 | 그림 = | 그림_설명 = | 이름 = 전황후 황원삼<br />(傳皇后 黃圓衫) | 지정_번호 = 제49호 | 지정연월일 = [[1979년]] [[1월 23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군자동 산 2번지<br />[[세종대학교 박물관]] | 제작_시기 = [[조선시대]] 말기 | 비고 = }} '''전황후 황원삼'''(傳皇后 黃圓衫)은 궁중에서 큰 예식이나 혼례식 때 입었던 왕비의 원삼이다. [[1897년]] [[대한제국]]이 되면서 [[소례복]]으로 [[황원삼]]을, [[대례복]]으로 [[심청적의]]로 정하였다. 조선 초기에 명에서 왕비의 단삼을 사여받아 예복으로 착용하였는데, 관리의 단령과 형태가 같은 것이었다. 조선 후기 형태가 원삼으로 변하여 현재도 혼례복으로 착용되고 있다. 조선 영조 25년 [[국혼정례]]에는 빈궁 의대 안에 노의와 함께 장삼과 원삼이 따로 있었는데, 조선 말기에 원삼 한 가지로 통일되었다. 조선말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왕비를 황후라 하고, 홍색 원삼도 황후 복색을 쫓아 황색 원삼으로 바뀌었다. 이 황원삼에 '긔미 신조'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왕 가례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왕의 가례일은 [[1919년]] [[1월 25일]]이었으나 고종이 가례 3일 전에 승하하신 관계로 [[1922년]]에 가례를 치르게 되었다. {{서울시공개자료}}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토막글|옷}} [[분류:서울특별시의 국가민속문화유산]] [[분류:복식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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