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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鄭尙仁)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다. == 생애 == [[평안북도]] [[철산군]] 출신으로 [[1915년]]에 [[평양]]의 [[숭실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선천군]]의 북장로교 계열 학교인 신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선천 지역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양전백]]의 지휘 하에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때 정상인도 기독교 계열 인사들과 함께 신성학교 월례기독회를 이용하여 강연을 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중국]]으로 망명한 뒤 [[난징]]에 있는 금릉신학교에 진학했다. 귀국 후 [[1924년]]에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자가 되었다. 선천남교회에 재직하며 목회 활동을 하였으며, [[1932년]] 평북노회장에 선출되어 이 지역 장로교단의 유력한 인물이 되었다. [[1935년]]에 [[만주]]의 [[펑톈]]에 있는 서탑교회에 초빙받아 만주로 이주했다.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의 만주노회장이 되는 등 만주 지역 장로교단을 대표<ref>{{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ISBN=89-953307-2-4 |페이지=587쪽 }}</ref> 하였다. [[1941년]]에는 전쟁 시국으로 기독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만주 지역의 [[개신교]] 교파가 강제로 통합되었다. 이때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등이 모두 통합된 만주기독교총회의 총회장에 올랐고, 역시 초교파적 신학교로 펑톈엔 설립된 만주신학원 원장직도 맡았다. 이러한 행위는 일제의 종교 정책에 협력한 것으로 간주되어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개신교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 일제 패망 후 [[소군정]] 지역인 평안북도 [[룡천군]] 남시교회에 부임했다가 월남하지 못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하에서 살해 또는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사망 시기와 경위는 알 수 없다.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9999_1_0012068|정상인|鄭尙仁}} == 각주 == <references/>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일제강점기의 목회자]]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목회자]]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철산군 출신]] [[분류:생몰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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