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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택'''(鄭禹澤, [[1889년]]~?)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다. 본적지는 [[서울]]이다. 1906년에 《[[대한매일신보]]》의 통신원이 되어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때부터 수재민이나 일본 유학생을 위한 의연금을 모으는 등 사회 활동에 적극 나섰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연설회를 개최하여 연설을 하고, 의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인 1912년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회부 기자가 되었다. 1921년부터 사회과장, 사회부장으로 승진해 재직했고, 1923년까지는 편집인 겸 발행인도 겸했다. 정우택이 매일신보 편집인 및 발행인을 지내는 동안, 매일신보는 사설을 통하여 일선융화를 강조하거나 [[일본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고 총독정치를 찬양하는 등 총독부의 시책을 충실히 선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1921년에 조선인 기자들이 창립한 범언론인 단체인 [[무명회]]에서 초대 상임간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1925년에 《[[동아일보]]》로 옮겨 1932년까지 정리부장 직을 맡았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과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언론 부문에 선정되었다. == 같이 보기 == * [[매일신보]] == 참고 문헌 == * {{서적 인용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날짜=2007-12 |id=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출판위치=서울 |쪽=1855~1869쪽 |장=정우택 |장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7JOSA/SUJAKSUBSAK/150-JWT.pdf }}{{깨진 링크|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7JOSA/SUJAKSUBSAK/150-JWT.pdf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889년 출생]] [[분류:몰년 미상]] [[분류:20세기 한국 사람]] [[분류:대한제국의 언론인]] [[분류:일제강점기의 언론인]]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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