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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윤'''(鄭昌允, <small>일본식 이름: </small>大山昌允)은 [[일제강점기]]의 [[승려]]이다. == 생애 == [[평양]]의 [[영명사 (평양)|영명사]]와 [[평안남도]] [[평원군 (평안남도)|평원군]]의 [[법흥사 (평원군)|법흥사]]는 본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독립된 본산이었으나, [[1920년]]부터 본산 주지직을 통합했다. 정창윤은 [[1937년]]에 영명사와 법흥사 통합 주지로 뽑혀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았다. 1937년은 [[중일 전쟁]]이 발발한 해였다. 중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 영명사와 법흥사에서는 [[일본군]]의 승리를 비는 시국 집회가 열렸고, 국방헌금과 일본군 위문금 모금도 시작되었다. [[1938년]] [[4월 1일]]의 중간 결산 결과에 따르면, 정창윤이 영흥사와 법흥사 본·말사에서 모금해 일본군에 헌납한 금액은 국방헌금 32원 30전과 위문금 50원이다. 두 사찰의 시국 행사와 국방헌금 모금은 계속되었고, [[1940년]]에는 중앙교무원 이사로 선출된데 이어 영명사·법흥사 통합 주지로 재선되었다. 정창윤은 첫 임기 중 영명사의 재산을 크게 늘리고 포교와 교육에도 힘써 평남 지역의 불교 부흥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았다. 1940년은 전쟁 중이었으나 [[황기 (기년법)|황기]] 2600주년이라는 이유로 일본 [[도쿄]]에서 대대적인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때 정창윤은 조선 불교계 평안남도 대표로 이 행사에 참석했다. 중일 전쟁 2주년 기념 위문금과 조선 불교계 전체가 모금하여 일본군에 헌납할 전투기 대금 헌납 등으로 영명사와 법흥사의 전쟁 지원은 계속되었다. 정창윤은 [[1943년]] 영명사·법흥사 주지로 또다시 선출되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는 시점까지 이 절의 주지직을 맡고 있었으나, 이후 평양 지역에서 [[소군정]]이 시작되면서 소식을 알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 == 같이 보기 == * [[영명사 (평양)|영명사]] * [[법흥사 (평원군)|법흥사]] == 참고 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임혜봉 |제목=친일 승려 108인 |날짜=2005-03-01 |출판사=청년사 |출판위치=서울 |ISBN=9788972783848 |장=정창윤 : 일제에 적극 협력한 친일 본산 주지 |페이지=262~265쪽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일제강점기의 승려]]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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