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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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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만'''({{zh|t=臺灣戰後時期|s=台湾战后时期|p=Táiwān Zhànhòu Shíqī}}) 혹은 '''중화민국 통치 시기의 대만'''({{zh|t=中華民國領臺時期|s=中华民国領台时期}})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화민국]] 통치 시기의 [[대만]]에 대한 내용이다.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쟁]], [[중일 전쟁]] 등)에서 패망함에 따라 본토인 [[일본 열도]]를 제외한 모든 해외 식민지를 반납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의 첫 번째 식민지 중 하나였던 [[대만]]은 [[1895년]]부터 시작되었던 [[대만일치시기]]를 마치고 반세기 만에 [[중화민국 대륙 시기|중화민국]]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1945년]]부터 중화민국이 통치하게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국공 내전]]으로 [[1949년]]에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이 [[난징시|난징]]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베이시|타이베이]]로 옮기면서 대만은 일개 변두리 섬에서 [[중화민국]]의 중심 무대로 탈바꿈하였다. == 1945년 이전 == {{본문|대만일치시기}} [[청일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하여 [[일본 제국]]에게 [[만주]] 및 [[대만]]과 [[펑후 제도]]를 할양하였다. 일제는 [[타이베이시]]에 [[대만총독부]]를 설치하고 타이베이를 '''다이호쿠'''({{llang|ja|台北}})로 불렀다. 한편 [대만에 있던 [[청나라]]의 관리 및 주민 일부가 [[시모노세키 조약]]에 반발했고, 이들은 자체적으로 [[대만민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군대가 재빠르게 대만민주국 세력을 정벌하면서 멸망하였다. 이후에도 현지 주민에 의한 저항 운동이 일어났으나, [[1915년]] [[타파니 사건|다마이 사태]] 이후에는 무장 투쟁이 중단되었다. 그 다음부터 대만총독부가 [[일제강점기|일제 강점기 조선]]에서도 시행되었던 바 있는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 1945년 이후 == === 2·28 사태 === {{본문|2·28 사태}}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대만]]은 [[펑후 제도]]와 함께 50년 만에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대만]]을 통치하게 된 [[중화민국]]의 관료들은 상당히 부패하여 민생을 돌보지 않았다. 더구나 정부에서는 [[본성인]]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고 차별하였다. 본성인들은 이러한 차별대우와 고압적인 관료들의 태도에 분개하여 [[2·28 사태]]를 일으켰다. [[타이베이시]] 의회는 곧 협상에 들어갔으나 [[국공 내전]]에서 [[중국 국민당]]의 패색이 짙어져 [[중화민국 국군]]이 대거 [[대만]]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정부는 입장을 바꾸어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렇게 이 사태는 진압되었고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중인 상황을 구실로 계엄을 해제하지 않았다. === 타이베이 천도 === {{본문|국부천대}} [[중화민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의 하나로 [[미국]], [[영국]], [[자유 프랑스]], [[소비에트 연방]]과 함께 승전국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의 무리한 [[국공 내전|내전]]으로 인해 민중의 지지 기반 상실, 악성 인플레이션 등 여러 악재가 겹쳐져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1949년]] [[10월]]에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어 [[중국 대륙]]에서의 중화민국의 통치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편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를 필두로 [[대만]]으로 피난하여 그해 [[12월]]에 [[난징시|난징]]에 있던 정부를 [[타이베이시|타이베이]]로 옮겼다. 이후에도 줄곧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다툼이 있었다. 대만 이주 당시 또 다른 갈래는 [[대한민국]]의 [[인천]]이나, [[일본]]의 [[나가사키 차이나타운|나가사키]] 등에 정착하는 경우로 분류되었다. == 타이베이 천도 이후 == === 중화민국재대만(中華民國在台灣) 시대 ===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중화민국]]의 중심 무대는 이제 대륙이 아닌 [[대만]]으로 바뀌었다. [[국공 내전]]에서 “공산비적”으로 깔보았던 [[중국 공산당]]에게 철저히 패배한 [[중국 국민당]]은 본토 수복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1955년]]에 [[다천 섬 철수]] 이후부터 대륙 수복의 꿈은 점차 좌절되기 시작했고, [[1958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중화민국]]이 통치하는 [[진마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서 대만 해협은 초긴장의 상황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대만 해협은 계속적인 전운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1971년]] [[10월 24일]]에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서 새로운 중국 대표로 승인된 뒤 [[중화민국]]은 유엔 내 중국 대표로서의 권리와 의석을 모두 잃게 되었고, [[1979년]]에는 최대 우방국이었던 [[미국]]과 단교하였다. [[1978년]]에는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가 [[중화민국의 총통|총통]]이 되어 [[중화민국]]의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8년]]에는 최초의 [[대만]] 출신 총통인 [[리덩후이]]가 집권하여 [[대만]] 내 [[민주화]]의 기틀을 다졌다. 이 때 [[리덩후이]]는 "양국론"을 주장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반발하였다<ref>당시 [[리덩후이]]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각자 독립된 국가 자격으로 국제 사회에 참여하자는 의도로, [[대만 문제]]와는 거리가 있었다.</ref>. [[2000년]]에는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중화민국]] 사상 최초로 야당 출신의 총통으로 집권하게 되었다. [[천수이볜]]은 적극적인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일변일국론"을 내세우며 [[대만 공화국]]으로의 [[대만정명운동|정명]]을 위한 여러 조치가 이루어져 [[중화인민공화국]]이 반발하였다<ref>[[천수이볜]]은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비롯하여 [[중국]]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없애고 대만 개별국가화 및 탈중국화(脫中國化)를 지향했다.</ref>.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가, [[2016년]]부터 [[차이잉원]]이 최초의 여성 총통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같이 보기 == * [[대만의 역사]] * [[중화민국]] * [[하나의 중국]] * [[장제스]] *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 *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 각주 == <references/> {{전후 시대 | 나라 = [[타이완]] | 전 = {{국기|일본 제국}}<br /> [[대만일치시기]]<br />1895년 ~ 1945년 | 후 = - | 현재문서 = {{국기그림|중화민국}} [[중화민국]]<br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타이완 | 시작 = 1945년 | 종료 = 현재 }} {{아시아의 역사}}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만| ]] [[분류:제2차 세계 대전 중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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