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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섭'''(陳瑢燮, ? ~ ?)은 [[일제강점기]]의 경찰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이다. == 생애 == [[1929년]] [[11월 16일]] 조선총독부 순사로 임명되었으며, [[1934년]] 전라남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순사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전라남도 경찰서에 근무하면서 전남운동협의회 관련자들을 체포하는 공을 세웠다. 진용섭은 [[전라남도]] [[강진군]]의 한 주재소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사건의 배후에 비밀결사가 있음을 탐지했다. 결국 전라남도 [[해남군]]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일대에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나 총 558명이 체포되는 대형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전남운동협의회는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았거나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던 전남 지역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적색노조 건선을 위해 조직한 단체였다. 일제 강점기의 최대 규모 농민운동으로 꼽힐 만큼 방대한 조직을 농촌 지역에 건설했지만, [[노주봉]]과 진용섭 등 전남경찰부 순사들에게 적발되어 와해되고 만다. 이 사건 외에도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간부로서 수배 중이던 김상혁을 검거하기 위해 여성 조직원을 체포, 취조하였다. 당시 진용섭은 피곤을 무릅쓰고 [[광주광역시|광주]]의 빈민가와 노점을 샅샅이 뒤지는 열성을 보였다. 1934년에는 광주학생운동 관련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광주노동조합건설준비위원회를 적발하는 등 전라남도 지역 민족운동 탄압에 앞장섰다. [[1936년]]부터 [[1937년]]까지 경상남도 경찰부 고등경찰서 순사부장을 역임했으며, [[1938년]]부터 [[1941년]]까지 경상남도 북부산경찰서 순사주임 겸 고등계 주임을 역임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 중 경찰 부문에 포함되었으며, [[2008년]]에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참고 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연도=2007 |발행월=12 |id=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출판위치=서울 |쪽=1496~1502쪽 |장=진용섭 |장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7JOSA/SUJAKSUBSAK/124-JYS.pdf }}{{깨진 링크|url=http://www.pcic.go.kr:8088/pcic/UserFiles/File/2007JOSA/SUJAKSUBSAK/124-JYS.pdf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생몰년 미상]] [[분류:20세기 한국 사람]] [[분류:일제강점기의 경찰]]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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