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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이름 =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 |원어명 = Karl August Fürst von Hardenberg |그림 = Hardenberg.jpg |그림설명 =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 |본명 = |로마자 표기 = Karl August von Hardenberg |출생일 = 1750년 5월 31일 |출생지 = |사망일 = 1822년 11월 26일 |사망지 = |국적 = 프로이센 |학력 = |경력 = * 하노버 선제후령 법무부 고문관 * 프로이센 왕국 재상 |직업 = 정치가 |병역 = |활동기간 = |소속 = |종교 = |배우자 = |상훈 = |웹사이트 = |서명 = }}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 후작'''({{lang|de|Karl August Fürst von Hardenberg}}, [[1750년]] [[5월 31일]] ~ [[1822년]] [[11월 26일]])는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정치가이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재상]]의 자리에 올라 무기력했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를 보좌하여 [[프로이센 왕국]]을 지켜냈다. [[1770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령|하노버 선제후령]]에서 [[하노버 왕가|하노버 선제후]]이자 [[영국]]의 군주였던 [[조지 3세]] 막하에서 법무부 고문관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간통 사건 등으로 사생활에 대한 추문이 일어 출세의 전망이 흐려지자 [[1790년]] [[프로이센 왕국]]으로 옮겨갔다. 곧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신임을 얻은 하르덴베르크는 [[카를 폰 슈타인]]과 손을 잡고 왕국의 행정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1807년]] 4월, 마침내 프로이센 정부의 [[고문]] 제도가 철폐되고 각 부의 [[장관]]들이 직접 국왕과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내각 (정치)|내각]] 제도가 자리잡게 되었다. 내정개혁을 이룰 때까지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하르덴베르크는 개혁이 이루어지자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여 [[나폴레옹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지지했으나, 전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은 [[예나 전투]]에서 대패하고 [[나폴레옹]]에 평화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나폴레옹]]이 반프랑스파인 하르덴베르크의 실각을 요구하자, 그는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1810년]], [[프로이센 왕국]]은 파산하여 더 이상 [[나폴레옹]]에게 전쟁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하르덴베르크는 스스로 재정 문제 해결의 적임자임을 자처하며 나섰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무엇보다도 전쟁 배상금 문제 해결을 중히 여겼던 [[나폴레옹]]도 생각을 바꾸어 하르덴베르크의 등용을 허락하였다. 하르덴베르크는 재상의 지위에 올랐으며 내무와 재무 전반을 통제하게 되었다. 하르덴베르크는 귀족에게도 [[재산세]](그 때까지는 면제였음)를 부과함으로써 재정상의 돌파구를 찾으려 시도했다. [[융커]] 계급은 결사적으로 국왕에게 영향을 끼쳐 이러한 개혁을 무위로 돌리려 노력하였으며 행정관료와 이들 지주 귀족층의 대립으로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1812년]]을 지나면서부터 개혁 문제로 하염없이 대립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정세가 한가롭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해 초에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은 [[러시아 원정]]을 단행하려는 [[프랑스]]와 동맹을 강제당했다. [[러시아 원정]]이 비참한 결말로 마무리되자, [[1813년]] 2월, 하르덴베르크는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과 [[러시아 제국|러시아]] 사이의 [[칼리시 동맹]]의 체결을 주도하고, 공공연히 반프랑스의 입장으로 선회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하르덴베르크는 [[빈 회의]]에 왕국을 대표하여 참석했다. [[바르샤바 대공국]]과 [[작센]]의 귀속을 둘러싸고 [[영국]]-[[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프랑스]]와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러시아 제국|러시아]] 사이에 전운이 감돌자,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작센]] 전부를 영유해야겠다는 입장을 포기함으로써 회의 타결의 물꼬를 텄다. == 외부 링크 == {{위키공용}} * {{Cite Americana|wstitle=Hardenberg, Karl August, Prince|year=1920 |short=x}} {{프로이센의 총리}} {{프로이센의 외무장관}} {{독일의 통일}}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기본정렬:아우구스트, 카를}} {{토막글|정치인}} [[분류:프로이센의 정치인]] [[분류:프로이센의 총리]] [[분류:프로이센의 외교관]] [[분류:일루미나티 회원]] [[분류:1750년 출생]] [[분류:1822년 사망]] [[분류:나폴레옹 전쟁 관련자]] [[분류:니더작센주 출신]] [[분류:독일의 후작]] [[분류:하르덴베르크가]] [[분류:프로이센의 외무장관]] [[분류:프로이센의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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