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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이름 = 향사당<br />(鄕社堂) |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그림크기 = 150 | 그림설명 = |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 유형 = [[제주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재 (제1호 ~ 제100호)#제1호 ~ 제100호|유형문화재]] | 번호 = 6 | 지정 = [[1975년]] [[3월 12일]] | 해지 =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973-2번지 | 시대 = | 소유 = | 참고 = | 면적 = | 수량 = 1동 | 전승지 = |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 띄움 = | 꼬리표 = 향사당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좌표 = {{좌표|33|30|43|N|126|31|15|E|type:landmark|display=inline,titl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21,00060000,50 }} '''향사당'''(鄕社堂)는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건축물이다. 1975년 3월 12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향사당(鄕社堂)·향서당(鄕序堂)·집헌당(執憲堂)·풍헌당(風憲堂)·향헌당(鄕憲堂)·회로당(會老堂) 등으로도 불렸다. == 개요 == 향당(鄕黨)의 나이 많은 어른들이 모여서 향중(鄕中)의 여러 일들을 의논하거나 향사(鄕射)· 독법(讀法)을 하며 향안(鄕案)을 보관하고 삼향임(三鄕任 : 좌수·좌별감·우별감)이 상시근무하던 청사이다.<ref>[http://encykorea.aks.ac.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무과에 합격하지 못한 각 고을 무반(武班)들이 봄·가을 2차례 모임을 갖고 활쏘기와 잔치를 베풀며 여러 가지 일들을 의논하던 곳이기도 하다. 가락천 서쪽에 처음 지었던 것을 조선 숙종 17년(1691)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짓고 향사당(鄕射堂)이라 이름지었다. 그 뒤 정조 21년(1797)에 이름을 향사당(鄕社堂)이라고 고쳤다. 조선 전기에는 좌수의 처소로 쓰이다가 고종 16년(1879)에 신성여학교 자리로 이용하였다. 이 건물은 1981년에 동남향이던 방향을 동북향으로 바꾸어 다시 지은 것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21,00060000,50|향사당}}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재]] [[분류:제주시의 문화유산]] [[분류:제주시의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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