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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년 10월 6일 – 2006년 2월 25일)는 미국의 [[토목공학]]자, [[창조과학]] 신봉자이다. 홍수지질학회의 회원이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1}} == 생애 == 텍사스에서 출생했다. 남침례교인이다. 아버지는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대공황]] 때 가정 형편이 나빠져서 등록금이 무료인 라이스 대학에 입학했다. 1939년 [[토목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학업성적은 뛰어났고 우등생 친목 단체(Phi Beta Kappa)에도 가입했다. 졸업 후 국경선과 물 위원회(International Boundary and Water Commission)에서 일했다. 직장 때문에 엘 파소로 간 모리스는 틈틈이 성경공부를 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고 진화를 비롯한 사실들을 인정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58}} 성경공부를 하면서 창조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문자적 6일 창조를 지지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뒤 라이스 대학으로 돌아와 3년 간 토목공학을 가르쳤다. 종교 활동도 열심히 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59}} 미네소타 대학원에서 유체공학을 공부했고 1950년 박사학위{{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6}}를 받았다. 지질학과 수학을 부전공했다. 이후 케이준 지역의 사우스웨스턴 루이지애나 연구소 토목공학과 과장으로 부임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4}} 1960년대에 그는 주로 [[침례교]] 교회, 몇몇 보수적인 [[장로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성공회]] 교회, [[감리교]]회, [[메노파]] 교회, [[오순절 교회]]에 연설을 하러 다녔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92}} 1975년 말에 휘트컴과 공동 저작물을 만들기로 하였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7}}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VPI)에서 토목공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원고를 써 나갔다. 모리스는 350쪽이나 책에 기여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8}} 1969년 봄 토목공학과 교수 사임 의사를 밝혔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500}} 1970년에 성경학교와 창조과학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미국 서부를 갔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658}} == 가족 == 아내 메리 루이스(Mary Louise), 아들 셋, 딸 셋이 있다. 모리스는 그의 가족을 신앙심 투철하고 결속력 있게 꾸려나갔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95}} == 주요 입장 ==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믿었다. 전지구적인 대홍수를 지지했다.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를 지질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생각했다가 프라이스의 이름이 들어간 경우 사게 될 반발을 우려하여{{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70}} 나중에 그 입장을 철회{{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3}}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었으며 [[전천년설]]을 지지했다. [[젊은 지구 창조설]]을 지지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2}}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해 오해하여 [[창조과학]]을 옹호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3}} 창조와 타락의 과정 중 타락의 결과 생물들이 죽기 시작했다고 했다. 따라서 타락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떤 죽음도 없었다고 하였고, 그러므로 모든 화석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생긴 것이라고 추측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79}} 프라이스의 추측과 다른 점은 모리스의 것은 [[엘런 화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에덴 이전에도 생명체가 있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젊은 지구 창조설|젊은 지구]]를 고집하지는 않았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80}}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홍수지질학이 나왔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65}} 《창세기의 홍수》에서 신이 인간에게 준 책은 자연과 성경이 있는데, 성경이 자연보다 우선하며 인간에겐 자연 역시 해석할 선택권이 있다고 보았다. 자연과 성경은 모두 오류 없는 것이어서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없다고 주장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73}} [[충상단층]]의 반박을 위해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처럼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치프산을 예로 들었다. 치프산에는 오랜 [[선캄브리아기]] 석회석이 그보다 덜 오래된 [[백악기]] 지층 표면에 정확히 일치해서 놓여있다. 모리스는 또한 《창세기의 홍수》에서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나 틀린 설명이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77}} 그는 [[방사능 탄소 연대측정법]]에 대해서도 반박하려고 했다. 홍수 이전에 거대한 수증기 덮개가 지구를 감싸고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우주의 방사선으로부터 생명체들을 보호했기 때문에 홍수 이전 생명체들의 수명이 길었다고 했다. 또한 이 수증기 덮개가 대기의 높은 곳에서 방사성 탄소의 생성을 막았기 때문에 현재에 비해 일반탄소 대비 방사성 탄소의 양을 현저히 낮추었다고 주장했다.(탄소연대측정법에서는 두 값의 비율이 장시간에 걸쳐 일정하다고 가정한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80}} 물론 당연하게도 이는 과학적 근거와는 동떨어진 그만의 주장이었다. 그는 홍수지질학의 역할이 진화론이 진짜인지 창조주의가 진짜인지 판결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만약 홍수가 일어났을 때 화석을 품은 지층들이 생겼다는 것이 증명되기만 한다면 이 문제의 결론이 나온다고 보았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81}} 이 홍수지질학은 후에 [[통일교]]의 영향을 받은 주장들과 합쳐져서 [[창조과학]]이라는 [[유사과학|사이비과학]]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1974년 무렵 [[유사과학|사이비과학]]에 해당하는 [[창조과학]] 교과서가 나온 뒤로는 교과서 상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되, 성경 구절을 언급하면서 가르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초적인 과학적 창조 모델만을 가르쳐야 [[창조주의]]의 다양한 해석이 잘못 전달될 염려가 없다고 보았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566}} == 평가 == 《창세기의 홍수》가 저술된 이후 보수적인 기독교 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외에서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Sfn|로널드 L. 넘버스|2016|p=494}} == 같이 보기 == *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 * [[존 휘트컴 주니어]] * [[유사과학|사이비과학]] ** [[창조과학]] == 외부 링크 == * {{위키인용집-줄}} == 각주 == {{각주}} == 참고 문헌 == * {{서적 인용|저자1=로널드 L. 넘버스 |제목=창조론자들 |날짜=2016 |출판사=새물결플러스 |isbn=9791186409558 |ref=harv}} {{전거 통제}}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토막글|미국 사람}} [[분류:미국의 창조과학론자]] [[분류:텍사스주 출신]] [[분류:미국의 토목공학자]] [[분류:엘패소 출신]] [[분류:기독교 변증학자]] [[분류:미국의 기독교 젊은 지구 창조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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