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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이름 = 현영섭 |원어명 = 玄永燮 |그림 = |그림설명 = |본명 = 현영남 |로마자 표기 = |출생일 = 1907년 |출생지 = 경성부 장사동 |사망일 = ? |사망지 = |국적 = 일제강점기 조선 |학력 =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성제국대학 |경력 = 남화한인청년연맹, 녹기연맹,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내선일체실천사 이사, 황도학회 이사 |직업 = 친일 이론가 |병역 = |활동기간 = 1930년대 중반 ~ 태평양 전쟁 종전 |소속 = 녹기연맹,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내선일체실천사, 황도학회 |종교 = |배우자 = |상훈 = |웹사이트 = |서명 = }} '''현영섭'''(玄永燮, 일본식 이름: '''아마노 미치오'''({{llang|ja|天野 道夫}}), [[1907년]] ~ ?)은 [[일제강점기]]의 친일 이론가로, 본명은 '''현영남'''(玄永男)이며 본적은 [[경성부]] 장사동이다. == 생애 == 애미 뒤진놈 육자 출신으로 [[조선총독부]]의 관료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헌]]의 아들이며,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교토시]]에서 노동 운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상하이]]의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했다. [[백정기]] 등이 활동하고 있던 남화한인청년연맹에는 [[무정부주의]] 운동가인 [[원심창]]을 따라 가입했다고 하며, 이 조직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무정부주의 운동 때문에 잠시 투옥되었다가 출소한 뒤, [[내선일체]]를 위해 [[한국어]]를 전폐할 것을 주장하면서 극렬 친일파로 변신했다. 조선인이 주장하는 조선어 전폐론은 일본인들의 눈에 띄었고, 친일 단체인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기용되어 녹기연맹 기관지 《녹기》(綠旗)에 이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쟁 지원을 위한 강연에 가담하여 중국을 비난하거나 완전한 황민화를 통한 내선일체 구현, [[대동아공영권]] 실현을 홍보하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또한 1937년 이후에는 《[[삼천리 (일제 강점기의 잡지)|삼천리]]》(三千里), 《[[조광 (잡지)|조광]]》(朝光), 《총동원》(總動員) 등의 잡지에 내선일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할 것을 주장하는 다수의 글을 게재했다. 특히 [[1938년]]에 출간한 논설집 《조선인이 나아가야 할 길》({{llang|ja|朝鮮人の進むべき道}}), [[1939년]]에 출간한 논설집 《신생 조선의 출발》({{llang|ja|新生朝鮮の出發}})은 이러한 논리의 결정체였다. 현영섭은 일본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예찬하면서 언어와 이름을 포함한 모든 생활 양식을 일본과 같게 하여 내선일체를 구현할 것을 주장했다. [[민족주의자]]를 [[흑사병]]([[페스트]])에 비유하는 독설을 통해 지식인들에게 진심으로 일본을 사랑할 것을 주문하였다.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주사를 거쳐 [[1940년]]에는 황도(皇道) 정신의 발양, 내선 결혼 실천 등을 목적으로 내건 황국신민화 단체이자 친일 출판사인 내선일체실천사(內鮮一體實踐社)의 이사가 되었고, [[황도학회]]의 이사도 맡아 [[태평양 전쟁]] 종전 때까지 강연 활동을 통해 전쟁 지원을 계속했다. 1940년 7월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 〈외국(外國)의 토인 부대(土人 部隊)와는 절대(絶對)로 다르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인석 (군인)|이인석]] 상병의 유훈을 본받을 것을 주장했고, 1943년 8월 2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게재한 《역사 창조의 날》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징병제 실시를 찬양했다. 광복 이후에 일본으로 도피한 뒤 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1949년]] 8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불구속 송치되기도 했다. == 사후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평가 == 현영섭의 친일 행위는 급진적이고 전투적이며 철저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의 목표는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이었고, 그의 이상은 “완전히 일본인화한 조선인에게서 재상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일본에게 혼을 판 진짜배기 매국노”로 빈축을 샀고, 일본인에게는 “눈을 가리고 싶어진다.”라는 말을 들었다. == 같이 보기 == * [[현헌]] * [[녹기연맹]]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친일파 99인 2 |날짜=1993-03-01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SBN=9788971990124 |장=현영섭 :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 꿈꾼 몽상가 (김민철)}} * {{서적 인용 |저자=임종국 |기타=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제목=실록 친일파|날짜=1991-02-01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SBN=8971990368 |쪽=107~115쪽 |장=내선일체의 기수들 |인용문= }}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907년 출생]] [[분류:몰년 미상]] [[분류:20세기 사망]] [[분류: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분류:한국의 아나키스트]] [[분류:이론가]] [[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 [[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현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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