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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정보 | 이름 = 홍찬 | 그림 = | 설명 = | 본명 = | 출생 = [[1909년]] | 출생지 = | 사망 = [[1964년]] | 사망지 = | 국적 = [[대한민국]] | 분야 = 영화제작 | 교육 = }} '''홍찬'''(洪燦, [[1909년]] ~ [[1964년]])은 [[영화]] 분야에서 주로 활동한 [[한국]]의 기업인이다. == 생애 == [[일제강점기]]에 [[영화 감독]] [[이규환 (영화 감독)|이규환]]과 함께 영화사 [[성봉영화원]]을 설립했다. 성봉영화원은 《나그네》(1937)와 〈군용열차》(1938)를 제작했는데, 이 중 군용열차는 [[중일 전쟁]]을 배경으로 군수 열차와 중국인 스파이 등이 등장하는 친일 영화이다.<ref>군용열차는 중일 전쟁을~: [http://www.cineseoul.com/magazine/magazine.html?magazineID=323&cate=series 16. 한국 최초의 친일 어용 영화는? - 서광제의 "군용열차"(1938)] {{웹아카이브|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7210355/http://www.cineseoul.com/magazine/magazine.html?magazineID=323&cate=series#}} 《씨네서울》(2002.1.28)</ref> 광복 후 공연예술계에서 [[좌익]] 계열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극장 관리인 조직인 [[한성극장협회]]가 [[우익]] 계열에서 조직되었을 때 회장을 맡아 [[미군정]]과 공조했다.<ref> {{저널 인용 |저자 = 황문평 |제목 = 기획특집/해방공간(1945∼50)의 우리 문화예술*대중예술 - 내일을 지향하는 대중예술의 가치관 정립 |저널 = 문화예술 |연도 = 1988 |작성월 = 9 |url = http://www.kcaf.or.kr/zine/artspaper88_09/19880905.htm |확인날짜 = 2007-08-09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22035314/http://www.kcaf.or.kr/zine/artspaper88_09/19880905.htm |보존날짜 = 2007-09-22 |url-status = dead }} </ref> [[노덕술]], [[최란수]] 등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의 활동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 살해를 모의했을 때 자신의 집을 회의 장소로 내주었다는 설<ref>한홍구, [http://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1/05/021075000200105220360052.html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한겨레21》 제360호 (2001.5.22)</ref> 도 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된 바 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당시에는 [[스카라극장]]의 전신인 약초극장의 지배인이었고, [[1946년]] 약초극장을 인수하여 수도극장으로 개명하여 운영했다. 수도극장은 [[단성사]], [[국도극장]]과 함께 195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극장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홍찬은 [[이승만]]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6&article_id=1294 |제목 = 대통령을 움직인 사나이 |출판사 = 씨네21 |날짜 = 2001-04-03 |확인날짜 = 2008-05-22 |저자 = (구술) 심우섭, (정리) 심지현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29092620/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6&article_id=1294# |보존날짜 = 2007-09-29 |url-status = dead }}</ref>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정부와의 정경유착 관계를 이용하여 [[1957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안양촬영소]]를 설립하고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생명》(1958)을 제작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두 번째 작품 《낭만열차》(1958)도 흥행하지 못해 안양촬영소는 이듬해 부도 처리되었다. 《[[대한일보]]》 전신인 《평화신문》을 서울에서 창간하여 사장을 지내는 등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 참고 자료 == * 안재석, [http://www.kmdb.or.kr/2006contents/history_view.asp?idx=74 동양 최대의 촬영 스튜디오를 꿈꾸다, 안양촬영소]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한국영화변천사) * {{뉴스 인용 |저자=김준기 |제목=김준기의 극장순례 - 한국 영화계의 산 역사, 스카라극장 |출판사=컬처뉴스 |날짜=2005-08-08 }} == 각주 == <references/> == 외부 링크 == * {{KMDb 사람}} * {{IMDb 이름}}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분류:1909년 출생]] [[분류:1964년 사망]] [[분류:일제강점기의 기업인]]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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