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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무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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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무신일기
(李升原 戊申日記)
대한민국 경상남도문화재자료
파일:무신일기(이승원)표지.jpg
종목문화재자료 (구)제568호
(2013년 10월 24일 지정)
수량1책
소유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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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이승원 무신일기(李升原 戊申日記)는 무신란 당시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창군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2013년 10월 2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8호로 지정되었다.[1]

이 일기는 무신란 당시 거창 지방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 즉 좌수 이술원이 반란군의 주모자 정희량 등에게 살해당한 뒤, 이술원의 6촌 이내의 인물 10여 인을 이술원의 형 이승원이 인솔하여 복수하는 과정을 기술해 둔 것으로, 매우 단편적이지만 거창 고을에서의 민심의 향방이나 반란의 경과를 비교적 자세하게 파악하게 한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내용

첫장에 '무신일기'(戊申日記)라는 제목이 있으며, 그 뒤로 일기가 정갈한 글씨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승원의 삼종질 우하(遇夏)가 영조 27년(1751년) 9월 하순에 지은 '통정대부동재공행록'(通政大夫同齋公行錄), 재종질 우태(遇泰)가 쓴[주 1] '무신격서'(戊申檄書), 순조 3년(1803년)에 후손 방렬(芳烈)의 요청으로 당시 거창부사로 있던 윤희후(尹羲厚, 1740-?)가 쓴 '통정대부이공묘표'(通政大夫李公墓表)가 차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기와 행록은 한 사람이 쓴 것이고 격서와 묘표는 각기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파악된다.

일기와 행록이 한 사람의 글씨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일기는 이승원의 친필은 아닌 것이 분명하며, 집안의 자손 중 누군가가 이승원이 사망한 직후 이우하에게서 바로 행록을 받아 보관 중이던 일기의 초고와 함께 행록을 정리해 깨끗하게 옮겨 적고 책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2]

'무신격서'와 '묘표'의 경우 글자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언제 덧붙여 쓴 것인지 그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묘표가 지어진 시기를 고려할 때 《이승원 무신일기》는 1803년으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시점에 묘표를 덧붙여 옮겨 쓰고 현전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고 여겨진다.

참고 문헌

  • 최은주 (2021). “거창 지역 戊申亂 관련 일기자료와 李升原의 《戊申日記》”. 《남명학연구》 (71집): 203쪽. 

같이 보기

각주

내용주

  1. 이승원과 이우태 두 사람의 일기와 대조할 때 격서는 무신란이 한창이던 3월 30일에 지어진 것이다.

출처주

  1. 경상남도공고제2013-498호, 《경상남도 문화재 지정 고시》, 경상남도지사, 2013-10-24
  2. 최은주 (2021). “거창 지역 戊申亂 관련 일기자료와 李升原의 《戊申日記》”. 《남명학연구》 (71집): 203쪽.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