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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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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혜왕후
懿惠王后
조선 환조의 추존 왕비
전임 경순왕후 박씨
후임 신의왕후 한씨
이름
별호 의비(懿妃)
시호 의혜(懿惠)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1312년 이전)
사망일 1336년 2월 24일(1336-02-24) (음력)
가문 영흥 최씨
부친 영흥백 최한기
모친 홍원군부인 이씨
배우자 환조 이자춘
자녀 1남 1녀
태조 이성계 · 정화공주
능묘 화릉(和陵)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

의혜왕후 최씨(懿惠王后 崔氏, ? ~ 1336년 음력 2월 24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머니이다.

생애

본관은 영흥(永興)이다. 이성계의 어머니이며 이자춘의 아내이다. 역사서와 금석문에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생애는 전해지지 않는다.

영흥부원군으로 추증된 최한기(崔閑奇)와 아내 이씨(李氏)의 3녀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1] 정확한 출생연도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의혜왕후의 여동생인 경창옹주 최씨가 1313년초에 태어났음을 미루어 볼 때, 적어도 1312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2]

언제 이자춘과 혼인하였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이 건국되기 전인 1387년에 작성된 《이자춘 신도비(李子春神道碑)》의 비문 내용에 의하면 이자춘이 세번 장가를 들었는데 각각 이씨(李氏), 최씨(崔氏), 김씨(金氏, 정빈 김씨)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자춘의 두번째 부인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자춘과의 사이에서 정화공주태조 이성계를 낳았다. 이성계를 낳은지 5개월여만인 1336년 음력 2월 24일 사망하였다.[3] 이로 인해 태어난지 얼마 안된 이성계는 이모인 경창옹주에 의해 양육되었다.[3]

사후

남편 이자춘의 신도비가 작성된 1387년에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추증되어 있었다.

1392년(태조 1년), 아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에 의비(懿妃)로 추존되었으며[4], 1411년(태종 11년) 존호를 가상하여 의혜왕후(懿惠王后)로 추숭되었다.[5] 묘소는 함경남도 함주군 동흥리 내에 위치한 화릉(和陵)으로, 남편 환조정릉과 이웃하고 있다.

가족 관계

각주

  1. 일성록》정조 14년 경술(1790) 10월 3일(경술)
    (중략)

    대개 정효공영흥_최씨(永興崔氏)로 적서(嫡庶)에서 모두 아들을 얻지 못하고 사위 셋만 있었는데, 첫째는 제14대조 전석(全碩)이고 둘째는 우리 환조대왕(桓祖大王)이고 셋째는 영흥의 석양선(石良善)입니다.

  2. 경창옹주 최씨 묘지명(慶昌翁主崔氏墓碑銘)》
    영흥백 정효공 최한기의 딸이며, 우리 의혜왕후의 여동생이다. 황경 2년(1313년) 3월 3일에 태어났다.
  3. 경창옹주 최씨 묘지명(慶昌翁主崔氏墓碑銘)》
    우리 태조께서 태어나신 지 겨우 다섯 달 만에 의혜왕후께서 승하하시자, 옹주께서 태조를 젖먹여 기르셨다.
  4. 태조실록》1권, 태조 1년(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7월 28일 (정미)
    태조의 4대 조상에게 존호를 올리다
  5. 태종실록》21권, 태종 11년(1411년 명 영락(永樂) 9년) 4월 22일 (임자)
    종묘의 4실에 존호를 가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