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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중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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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중팔책
일본어식 한자 표기船中八策
가나 표기せんちゅうはっさく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선중팔책
로마자Senchū Hassaku

선중팔책(일본어: 船中八策)은 막말 사카모토 료마1867년(게이오 3년) 나가사키를 출항해서 교토로 가는 배 위에서 했던 작성했다고 알려진 정치 구상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 신정부강령팔책과 달리 문헌학적 근거가 없는 허구의 문건임이 밝혀졌다.

내용

一、天下ノ政権ヲ朝廷ニ奉還セシメ、政令宜シク朝廷ヨリ出ヅベキ事。

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하고, 새 정령을 조정에서 세워야 한다.

一、上下議政局ヲ設ケ、議員ヲ置キテ万機ヲ参賛セシメ、万機宜シク公議ニ決スベキ事。

상하의정국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어 만기를 시기에 맞게 공의로 결정해야 한다.

一、有材ノ公卿諸侯及ビ天下ノ人材ヲ顧問ニ備ヘ官爵ヲ賜ヒ、宜シク従来有名無実ノ官ヲ除クベキ事。

유능한 공경제후와 천하의 인재를 고문으로 삼아 관직을 내리고 종래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해야 한다.

一、外国ノ交際広ク公議ヲ採リ、新ニ至当ノ規約ヲ立ツベキ事。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공의를 모으고 새롭고 지당한 규약을 세워야 한다.

一、古来ノ律令ヲ折衷シ、新ニ無窮ノ大典ヲ撰定スベキ事。

옛 율령을 폐지하고, 새롭고 무궁한 대전을 제정해야 한다.

一、海軍宜シク拡張スベキ事。

해군을 확장해야 한다.

一、御親兵ヲ置キ、帝都ヲ守衛セシムベキ事。

어친병을 설치하여 제도를 수비하게 한다.

一、金銀物貨宜シク外国ト平均ノ法ヲ設クベキ事。

금은의 시세를 외국과 균형을 맞추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以上八策ハ方今天下ノ形勢ヲ察シ、之ヲ宇内万国ニ徴スルニ、之ヲ捨テ他ニ済時ノ急務アルナシ。苟モ此数策ヲ断行セバ、皇運ヲ挽回シ、国勢ヲ拡張シ、万国ト並行スルモ、亦敢テ難シトセズ。伏テ願クハ公明正大ノ道理ニ基キ、一大英断ヲ以テ天下ト更始一新セン。
이상 팔책은 현재 천하의 형세를 살피고 정한 것으로 이를 천하 만국에 공포한다. 이 조항을 새롭게 바꿀 때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해야 한다. 이를 단행하면 황운을 회복하고 국세를 확장하여 만국과 병립할 수 있다. 엎드려 바라건대 공명정대의 도리를 기반으로 일대 영단으로 천하를 새롭게 하자.

연구

선중팔책은 해원대 대원 나가오카 켄키치가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가오카의 자필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1] 료마는 대정봉환이 이루어진 이후인 게이오 3년 11월에는 선중팔책과 내용이 통하는 신정부강령팔책이라는 신정권 구상안을 썼고, 이 문건은 료마 자필 원본이 2매 현존하여 국립국회도서관시모노세키시립 조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역사학자 아오야마 타다마사는 2006년 논문에서 “(료마가 선중팔책으로 정권봉환을 건백했다고 알려진) 사실이 사료에 근거해 논증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썼다.[2][3][4]

치노 후미야메이지 시대 이후의 료마 전기류를 비교대조하여 연구한 저서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 선중팔책과 사카자키 시란』(2013년)에서 “선중팔책”의 성립과정을 다음과 같이 논증했다.

  1. 선중팔책에 가까운 내용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1896년 료마의 누나 치즈루의 손자인 히로마츠 노부에(弘松宣枝)가 발행한 『사카모토 료마』(민우사)에 언급된, 료마가 교토에서 써서 고토 쇼지로에게 보여주었다는 「건의안 11개조」다.[5]
  2. 1897년, 사카자키 시란이 『도쿄신문』에 「고토 백작 소전(小伝)」이라는 제목으로 고토 쇼지로 전기를 연재했는데, 여기서 료마가 고토에게 「건의 8책의 초안」을 보여주는 장면이 그려졌다. 보여준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명기되지 않는다.[6] 사카자키는 1900년 책 『소년독본 사카모토 료마』에서는 문건의 제목을 「8책」이라고 하고, 교토 도착 이후 쓰여진 것으로 설정했다.[7]
  3. 1907년, 궁내성에서 간행한 『순난록고』 「권제54 사카모토 나오나리」에서 현재와 거의 같은 내용의 「건의안 8조」가 기재되었다. 문건이 집필된 시기는 역시 교토 도착 이후이며 료마가 나가오카 켄키치에게 초를 잡도록 시켰다고 한다.[8]
  4. 1909년, 사카자키 시란은 「사담회례회(史談会例会)」 강연에서 고토와 료마가 나가사키에서 교토로 향하는 길에 협의한 결과 「시무 8책」이라는 문건이 생겼다고 말했다. 뱃전에서 썼다고는 명시하지 않았다.[9]
  5. 1912년, 서산회(瑞山会)에서 편찬, 간행한 『유신 토사 근왕사』(집필자 사카자키 시란)에서는 1907년 전후로 존재가 알려지게 된 「신정부강령 8책」(상술했듯이 실물 있음)을 게이오 3년 6월에 만들어진 「사카모토의 8책」이라고 하고, 종래의 「8책」은 「달리 전해지는 8책 원고」라 하여 서로 다른 문건으로 취급했다.[10] 이 달리 전해지는 8책은 원래 10책 혹은 11책까지 있었지만 9책 이후로는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11]
  6. 1913년, 유신사료편찬사무국 상치위원 오카베 세이이치는 사전회(史伝会) 강연에서 료마가 나가사키에서 상경할 때 고토와 협의해서 「시세 8책」을 썼다면서, 「신정부강령 8책」의 내용을 들며 현재의 「선중 8책」은 상경 이후 수정한 것이라고 했다.[12] 나아가 오카베는 1916년 「사카모토 나가오카 두 분 선생 50주기 기념 강연회」에서 “상경하는 뱃전에서 입안했다”며 「선중 8책」이라고 소개했는데, 그 8책의 내용이란 전의 내용과 같이 「신정부강령 8책」이었다.[12] 치노에 의하면 이것이 ‘선중 8책’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12]
  7. 1926년, 이와사키 쿄센이 편찬한 『사카모토 료마 관계문서 제1』(일본사적협회총서)에서는 「신정부강령 8책」을 게이오 3년 11월의 「료마 자필 신정부강령 8책」이라고 하는 한편, 오늘날 「선중 8책」이라고 알려진 것을 6월 15일 교토에서 확정된 「신정부강령 8책」, 배 안에서 기초되었다는 「선중 8책」은 그 초고인 것으로 서술했다.[13]
  8. 1929년, 히라오 미치오의 『사카모토 료마: 해원대 시말기』에서 「선중 8책」을 나가사키에서 상경 중인 뱃전에서 기초한 것으로 하였고, 이후 이것이 사실로 취급되어 지금까지 내려져 왔다.[14]

무츠 무네미츠고토 조지로의 회상, 나가오카 켄키치의 당시 일기 등에는 「선중 8책」에 해당하는 사실은 언급된 것이 없다.[15] 치노는 “사카모토 료마가 대정봉환을 고토 조지로에게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몇 번 인용을 반복하는 사이 「선중 8책」이라는 문서로 결실되어 어느새 사실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썼다.[16] 선중 8책의 출발점이 된 히로마츠 노부에의 「건의 11개조」에 대하여 치노는 히로마츠의 백부 사카모토 나오(타카마츠 타로)가 그 이야기의 출처였을 것이라 상정하고, 신정부강령 8책을 바탕으로 숫자 11은 삿초 동맹의 근원이 된 「약정의 대강」(4개조)과 「약정서」(7개조)를 합쳐서 11개조가 된 것 아니겠느냐는 야마모토 에이이치로의 설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17]

막말사 연구자 마치다 아키히로는 2019년 저서에서 치노의 이 연구에 의해 「선중 8책」은 그 존재가 “부정되었다”고 밝혀 쓰고 있다.[18]

같이 보기

각주

  1. 松浦 2008, 187쪽
  2. 知野文哉 2013, 13쪽.
  3. 青山忠正「文体と言語 坂本龍馬書簡を素材に」『明治維新の言語と史料』清文堂出版、2006年、p.162
  4. 知野文哉 2013, 291쪽.
  5. 知野文哉 2013, 56–59쪽.
  6. 知野文哉 2013, 60–62쪽.
  7. 知野文哉 2013, 62–65쪽.
  8. 知野文哉 2013, 66–68쪽.
  9. 知野文哉 2013, 69쪽.
  10. 知野文哉 2013, 73쪽.
  11. 谷是、『高知県謎解き散歩』、株式会社新往来社、2012年5月11日発行、P79。
  12. 知野文哉 2013, 76–79쪽.
  13. 知野文哉 2013, 80–81쪽.
  14. 知野文哉 2013, 85쪽.
  15. 知野文哉 2013, 48–51쪽.
  16. 知野文哉 2013, 17쪽.
  17. 知野文哉 2013, 102–110쪽.
  18. 町田明広 2019, 226–236쪽.

참고 자료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