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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중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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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중국 관계
싱가포르의 국기
싱가포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중화인민공화국
외교 공관
주중국 싱가포르 대사관주싱가포르 중국 대사관
사절
대사 피터 탄 하이 추안대사 차오중밍

싱가포르-중국 관계싱가포르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양자 관계를 의미한다. 싱가포르는 1990년에야 공식적으로 중국을 승인했는데, 이는 많은 다른 국가들보다 늦은 것이었다. 이러한 지연은 싱가포르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인접 국가들이 먼저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 8월 8일, 인도네시아와 중국이 관계를 재개하기로 발표한 이후 싱가포르와 중국은 양국 관계를 보다 공식적인 수준으로 격상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싱가포르와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의 세부 사항을 확정하기 위해 총 세 차례의 회담을 가졌으며, 첫 회담은 1990년 7월 27일에 열렸다.[1]

싱가포르와 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싱가포르는 자국의 국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중국의 점증하는 역내 중요성을 인정해 왔다. 싱가포르는 상호 존중과 지역 안정성을 기반으로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중국의 건설적인 참여를 지지하고 있다. 아세안을 통한 안보 및 대테러 분야에서의 협력을 포함한 중국과의 협력은 싱가포르가 역내 외교에서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3][4][5] 또한 싱가포르는 중국의 산업화 과정에 국가 차원의 협력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며 참여해 왔다. 이러한 협력의 일환으로 중국-싱가포르 쑤저우 공업원구, 중국-싱가포르 톈진 에코시티, 중국-싱가포르 광저우 지식도시, 싱가포르-쓰촨 하이테크 혁신공원, 중국-싱가포르 지린 식품구 등이 설립되었다.[6]

양국 관계는 여전히 강한 편이지만, 수차례의 주요 사건을 계기로 긴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2010년대와 2020년대에는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한 싱가포르의 대중국 입장, 아시아에서의 미국 군사 주둔 및 동맹 체계에 대한 싱가포르의 지지, 2016년 홍콩 당국에 의한 싱가포르군 차량 압수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7] 싱가포르는 또한 비공식 채널을 통해 대만과 교류를 지속하며, 이러한 관계는 특히 냉전 시기에는 경제적 우선 과제를 공유하면서 정치적 일치는 제한적인 형태로 형성되었다. 싱가포르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늦게 승인한 배경에는 20세기 후반 대만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8]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한 이후에도 싱가포르는 무역, 교육, 문화 교류 등 분야에서 대만과 비공식적인 협력을 이어왔다. 이러한 협력은 때때로 베이징의 불만을 사기도 했지만, 싱가포르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전략적 독립성과 균형 외교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다.

때때로 긴장이 존재하기도 했으나, 싱가포르와 중국은 국방, 무역, 교육, 인프라 개발 등 폭넓은 분야에서 꾸준한 협력을 유지해 왔다. 양측은 정기적으로 강한 양자 관계를 재확인하고 있으나, 싱가포르는 이러한 관계를 중국에 대한 예속이 아니라 상호 이익의 관점에서 추진해 왔다. 일대일로 구상과 같은 이니셔티브에 대한 싱가포르의 참여는 중국의 지정학적 목표에 동조하기보다는 자국의 국익에 초점을 맞춘 실용적 접근을 반영한다. 또한 싱가포르는 일관되게 아세안 중심성을 옹호해 왔으며, 베이징아세안 간의 중재를 모색해 왔다. 이를 통해 역내 협력에 대한 지지가 곧 중국 정책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를 의미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 왔다.[9][10][11]

역사

싱가포르의 영국 식민지 시절 및 말레이시아 시절

싱가포르와 중국 국민 간의 역사적 연계는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다수의 중국인 이민자들은 청나라 시기 빈곤과 분쟁을 피해 남양으로 알려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싱가포르 화교의 상당수는 푸젠성, 광둥성, 하이난성 등 남부 중국 지방을 조상 뿌리로 두고 있다.[12]

중일 전쟁은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가 되었으며, 말라야와 싱가포르에 거주한 많은 화교들은 중국을 강하게 지지하였다. 이들은 중국국민당중국공산당 양측에 일본군과의 전투를 지원하는 원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일본이 말라야 침공싱가포르 점령을 완료한 이후, 일본군은 숙청 작전과 같은 보복을 통해 화교 인구에 대해 가혹한 탄압을 가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만 명이 사망하였다. 말라야 인민반일군은 초기에는 저항 조직이었으나, 이후 공산당 계열의 말라야 국민해방군으로 발전하였다. 이어진 말라야 비상사태제2차 말라야 비상사태 동안, 말라야 공산당 산하 공산주의 반란은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혁명 영향력의 연장으로 여겨졌다.[13] 그러나 1974년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중국은 말라야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다.

싱가포르 (및 말라야)의 화교들은 초기부터 말라야 공산당(MCP)을 지지하였으며, 이로 인해 영국 식민 당국과 이후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으로부터 의심을 받았다. 중국어 중등학교와 남양대학교는 공산주의 활동의 온상으로 여겨졌다. 정부의 공산주의 영향 억제 노력에는 중국계 중학교 폭동과 콜드 스토어 작전과 같은 주요 사건이 포함된다. 남양대학교는 결국 재편되어 싱가포르 대학교와 합병되어 싱가포르 국립 대학(NUS)을 형성하였다.[14][15]

싱가포르 독립 이후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대부분 화교 인구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싱가포르가 중화민국 (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과 나란히 제3의 중국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인식을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피하고자 신중을 기했다. 이러한 신중함은 싱가포르의 공산주의 경험, 베트남 전쟁의 진행, 국내 정치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결과적으로 싱가포르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먼저 외교 관계를 수립할 때까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늦추어 중국 편향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16][13] 리콴유는 1976년 이후 중국을 공식 방문할 때 영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싱가포르를 대표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17]

이 시기 리콴유는 도미노 이론에 따라 공산주의 저지를 강하게 신봉하였다.[18]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이 싱가포르를 방어하지 못한 경험과 미국이 공산주의로부터 싱가포르를 방어할 의지가 있을지 의심한 리콴유는, 미국의 역내 존재를 소련과 중국에 대한 균형적 대응책으로 환영하였다.[16] 1970년대에 싱가포르와 중국은 비공식 관계를 시작하였고[19], 이는 1981년 9월, 무역대표부 상호 개설로 이어졌다.[20] 싱가포르와 중국 본토 간 상업 항공 서비스는 1985년에 개시되었다.[21] 공식 외교 관계는 1990년 10월 3일에 수립되어[22] ,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마지막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한 국가가 되었다.[23]

중국과의 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싱가포르는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1975년부터 시작된 군사 훈련 및 시설 협정이 그 예이다.[24] 이 협정에는 매년 실시되는 공식 훈련인 스타라이트 훈련이 포함된다.[25] 이러한 조치는 싱가포르의 제한된 국토 면적과 관련이 있다.[24] 2000년대에는 중국이 싱가포르에게 훈련 시설을 하이난성으로 이전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기도 했다.[26][27] 2004년, 리셴룽 총리가 취임하기 전 대만을 방문하여 최근 현황을 파악한 바 있으며[28], 중국은 대만의 민감한 정치적 지위 때문에 이 방문에 강하게 반발하였다.[29] 이후 중국은 양국 관계를 일시적으로 보류하였다.[30] 리셴룽은 첫 국가 기념일 연설에서, 대만 지도자와 국민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얻을 지원 수준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싱가포르의 역내 안정 유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반영하였다.[31]

같이 보기

각주

  1. “Article Detail”. 《www.nlb.gov.sg》. 2025년 9월 9일에 확인함. 
  2. “Asean to step up terror fight, hold naval drill with China”. 《The Straits Times》. 7 February 2018. 24 February 2018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4 February 2018에 확인함. 
  3. “Singapore, China leaders laud deep, growing ties”. 《TODAYonline》. 25 February 2018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4 February 2018에 확인함. 
  4. “Singapore and China's common interest 'greater than any occasional difference of views': DPM Teo”. Channel NewsAsia. 25 February 2018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4 February 2018에 확인함. 
  5. “Singapore a 'strong supporter' of China's peaceful development”. 《The Straits Times》. 25 May 2017. 24 February 2018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4 February 2018에 확인함. 
  6. “The special relationship with China”. 《TODAYonline》. 25 March 2015. 18 July 2024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5 September 2024에 확인함. 
  7. Liang Fook Lye ( 8 December 2016). “Singapore-China relations hit another snag”. Asia & The Pacific Policy Society. 9 December 2016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9 December 2016에 확인함. 
  8. Han, Enze (2024). 《The Ripple Effect: China's Complex Presence in Southeast Asia》.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769659-0. 
  9. “Scope for greater Singapore-China cooperation in education and transport: Ng Chee Meng”. 《The Straits Times》. 1 August 2017. 20 October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9 October 2017에 확인함. 
  10. “Singapore to promote stronger Asean-China cooperation: PM Lee Hsien Loong”. 《The Straits Times》. 19 September 2017. 20 October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9 October 2017에 확인함. 
  11. “Singapore-China ties 'stable, in good state', PM Lee says after prominent visit”. 《TODAYonline》. 19 October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9 October 2017에 확인함. 
  12. John Wong. “Sino-Singapore Relations: Looking Back and Looking Forward”. Singapore China Friendship Association. 1 March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6 July 2017에 확인함. 
  13. Tommy Koh (15 March 2016). “Taking stock of Singapore-China ties – past, present and future”. 《The Straits Times》. 24 August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4 August 2017에 확인함. 
  14. “Nanyang University”. 《Singapore Infopedia》. National Library Board. 9 September 2014. 4 July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7 July 2017에 확인함. 
  15. Kartini Binte Saparudin; Lee Meiyu ( 9 April 2014). “Nanyang University's student activism”. 《Singapore Infopedia》. National Library Board. 19 July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7 July 2017에 확인함. 
  16. “Transcript of an interview with Prime Minister Lee Kuan Yew by David Cox of London Weekend Television, recorded in Kingston, Jamaica, in May 1975” (PDF). National Archives of Singapore. 1975. 19 September 2017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17 July 2017에 확인함. 
  17. “Lee Kuan Yew's Legacy for China-Singapore Relations”. 《The Diplomat》. 5 December 2016. 12 August 2017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7 July 2017에 확인함. 
  18. Lee, Kuan Yew (2000). 《From Third World to First: The Singapore Story – 1965–2000》. New York: Harper Collins. 467,573쪽. ISBN 978-0-06-019776-6. 
  19. Zheng, Yongnian; Lye, Liang Fook (2015년 11월 6일). 《Singapore-China Relations: 50 Years》 (영어).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World Scientific. 10쪽. ISBN 978-981-4713-56-6. 
  20. Zheng, Yongnian; Lye, Liang Fook (2015년 11월 6일). 《Singapore-China Relations: 50 Years》 (영어).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World Scientific. 11쪽. ISBN 978-981-4713-56-6. 
  21. “Brief Introduction to Relations between China and Singapore”. Xinhua News Agency. 17 May 2002. 7 March 2010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January 2011에 확인함. 
  22. “Singapore and China establish formal diplomatic ties”. 《The Straits Times》. 1990년 10월 4일. 2023년 10월 15일에 확인함 – National Library Board, Singapore 경유. 
  23. 〈Singapore: Foreign Policy, China〉. 《Singapore: A Country Study》. Washington, D.C.: Library of Congress Country Studies. 1989. 11 January 2016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January 2011에 확인함. 
  24. “Singapore military ties now a 'threat'. 《Taipei Times》. 23 April 2002. 8 October 2012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January 2011에 확인함. 
  25. “星光計畫 – 台灣大百科全書 Encyclopedia of Taiwan”. Taiwanpedia.culture.tw. 2012년 11월 16일. 2013년 4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함. 
  26. “Singapore set to move training facilities from Taiwan to China”. 《Agence France Presse》 (Singapore Window). 22 September 2002. 20 June 2010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January 2011에 확인함. 
  27. Barry Wain (2004년 8월 5일). “A David-and-Goliath tussle”. 《Far Eastern Economic Review》. 2012년 7월 16일에 원본 문서 (archived at Singapore Window)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함. 
  28. “China warns Singapore officials against future visits to Taiwan”. 《Singapore-window.org》. Agence France Presse. 2004년 8월 26일. 2012년 7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함. 
  29. “China opposes Lee Hsien Loong's visit to Taiwan” (보도 자료). Embass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2 July 2004. 6 May 2010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January 2011에 확인함. 
  30. BBC Monitoring Asia Pacific,1 (2005년 2월 21일). “Chinese ambassador says ties with Singapore fully restored”. 795797051. 
  31. “Prime Minister's Office – National Day Rally Videos & Speeches”. Nettv.1-net.com.sg. 2012년 9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