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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삼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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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삼탁
嚴三鐸
출생1940년 5월 24일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사망2008년 2월 22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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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대한민국
학력동국대학교 대학원
경력국가안전기획부장 보좌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대통령 국방담당보좌관, 안기부장 비서실장, 병무청장,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
직업군인, 정치인
활동 기간1965년 ~ 1990년
소속민주자유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병역육군 예비역 소장
상훈체육훈장 기린장, 근정훈장 홍조장, 보국훈장 천수장

엄삼탁(嚴三鐸, 1940년 5월 24일 ~ 2008년 2월 22일,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국가안전기획부장 보좌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대통령 국방담당보좌관, 안기부장 비서실장, 병무청장,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노태우 정부의 실세였으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1] 문민정부 초기에 병무청장에 임명됐으나 슬롯머신 사건으로 낙마했다.

1965년 학군 ROTC장교로 육군 소위 임관되어 노태우 연대장 부관, 1969년 국방부 제30경비단장, 1983년 육군 제701특공연대장, 이후 육군 제3군사령부 감찰감, 학생중앙군사학교 교육단장 등을 역임했다. 87년 국군체육부대장 등을 역임했으며, 88 서울 올림픽, 88 장애인 올림픽의 본부에도 참여했다. 안기부장 보좌관, 안기부 기조실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대구 달성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대한민국에서 체육훈장 기린장, 근정훈장 홍조장,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전두환의 친동생 전경환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수도경비사령부 인사주임으로 재직 중 수경사 연대장 노태우를 만났으며, 전두환이 사단장으로 있을 때는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생애

초기 활동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에서 엄기주(嚴基周)와 창녕 성씨 성무호(成武鎬)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종의 후궁 귀인 엄씨의 친정오라비 엄계(嚴誡)의 후손으로, 엄계는 조선 연산군 때 화를 피해 달성군 논공면으로 이주하였다.

현풍초등학교 제 40회[2], 현풍중학교, 대구 능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경북대학교 사범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진학했다. 학생일 때 그는 씨름 선수였다.[3] 고등학교 재학 중 씨름선수로 활동했는데, 뒤에 씨름관련 단체의 임원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또한 유도 6단의 유단자였다.

씨름선수 출신 전경환이 고교 동창이었다. 고교동창이자 씨름선수 출신 전경환씨와의 인연으로 제5공화국 당시에도 요직에 있을 수 있었다.[3]

군인 생활

군 생활 초기

학군단(ROTC) 3기로 1965년 육군 장교 소위로 임관, 장교로 복무 중 1973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수도경비사령부 인사주임으로 재직 중 수경사 소속 연대장 노태우를 만났다.[4] 특유의 충성심으로 노대통령의 궂은 일을 도맡은 게 신임을 얻은 계기가 되었다 한다.[3] 이후 9공수여단 창설때 다시 노태우 여단장 휘하의 인사참모가 되었다.[5] 전두환이 사단장 시절 대대장으로 근무하였다.[6]

베트남 전쟁노태우가 연대장으로 파견됐을 때는 연대장 노태우의 부관으로 복무했다.[7] 그가 노태우의 부관으로 있을 때 매우 가까워져 김옥숙으로부터 '아무개 아빠'로 불릴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 1969년부터 1972년 국방부 30경비단장을 역임했다.

1983년 5월 1일 육군 제701특공연대의 창설에 참여하고 초대 연대장이 되었다. 이후 육군 제3군사령부 감찰감, 학생중앙군사학교 교육단장 등을 역임했다.

장군 재직

1987년 1월 육군 준장으로 진급, 국군체육부대장이 되었다. 국군체육부대장 재직 중, 1987년 2월 17일 대한체육회 이사 보궐선거에 당선, 정현규, 윤남식 등과 함께 대한체육회 이사로 선출되었다.[8]

1988년 9월 1일 대한체육회 이사이자 국군체육부대장으로 88 서울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원 경기부문 이사로 선임됐다.[9] 88 서울올림픽 기간 중 대한민국 선수단 제6경기본부장에 임명됐다.[10] 올림픽 기간 중 그는 서울올림픽 본부 조직위원, 대한체육회 경기력 향상위원, 88올림픽 국가대표선수단 총책으로 활동했다. 1988년 10월 장애인 올림픽(페럴림픽) 대한민국측 제1본부장으로 활동했다.

1989년 1월 20일 한국우슈협회 창립에 참여하고 초대 회장에 선출, 1989년 10월 26일까지 재임했다. 1989년 국가안전기획부장 국방담당 보좌관이 되었다. 89년 8월 동기생중 선두로 소장에 진급한뒤 사단장 보임이 좌절되자 안기부장 국방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3]

안기부 재직 중 안기부 남북대화지원본부장으로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여했다.[11] 육군 소장으로 승진, 이후에도 수개월간 국군체육부대장을 맡았다.[7]

안기부 재직

1990년 3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안기부 국방담당관으로 파견근무를 하다가 6개월만에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현역군인이 이 자리를 맡을 수 없다는 반발이 제기되자 전역했다.[6] 이후 안기부 기조실장이 되었다. 안기부 기조실장 재직 중 그는 공사비가 5000억원이 넘게 든 내곡동 청사 신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12] 당시 안기부 기획조정실장자리는 안기부의 자금을 관리하는 곳이어서 그를 두고 「대통령의 자금책」이란 소문이 무성했다.[6] 이때 야당으로부터 공작정치의 범이라는 눈총을 받았다.[3] 씨름협회장이자 민속씨름협회장을 역임했다. 1990년 9월 9일부터 2000년 10월 13일까지 그는 현풍초등학교 총동문회 제3대~7대 회장을 역임했다.

1992년 6월 고등학교 재학 중 씨름선수로 활동한 인연으로 민속씨름협회장에 추대됐다.[13]

1992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김영삼을 지원했다. 그는 1992년 대선때는 안기부내 반대파를 제압하고 김영삼을 적극 지지했다.[6] 김영삼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문민정부 출범 후 1993년 3월 병무청장에 취임했다.[12] 그러나 취임 전후로 재산 관련 문제가 불거지며 자질 논란이 일었다.[12] 3월 4일 대한씨름협회장과 민속씨름협회장직을 사퇴했다.[14] 또한 대한체육협회 부회장직도 사퇴했다.[15]

병무청장에 취임한 지 2개월 만에'슬롯머신' 로비에 연루돼 청장직에서 해임됐다.[12] 슬롯머신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정덕진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12] 1993년 7월 2일 서울지방검찰청 특수 1부는 슬롯머신 업계 대부 정덕진씨로부터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 병무청장 엄삼탁에 대한 첫 공판에서 엄 피고인에게 알선 수재죄 등을 적용해 징역 4년에 추징금 1억 5천만원을 구형했다.[16]

1993년 3월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되었다. 1993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되고 이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 한국씨름연맹 총재를 역임했다. 1994년 4월 27일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됐다.[17]

정치 활동

1995년 8월 12일 사면 복권되었다. 그해 재경대구경북도민회장이 되었다.[18]

1997년 대선 때는 재경 경북도민회장을 맡으면서 반대편에 섰던 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 진영에 합류했다.[3] 15대 대선 두 달 앞둔 1997년 10월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19]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 선임됐다. 김대중 정부 초기 2년여 동안 여당 부총재를 지냈다.[12]

1998년 4월 대구 달성지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자로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1998년 7월부터 2000년 2월 국민생활체육협의회장을 역임했고, 2000년 제12대 한국씨름연맹 총재로 취임해 2년간 활동했다.[12] 체육훈장 기린장, 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1998년 10월 제2의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달성군지구당 위원장이었다.

1999년 3월 국정원장 보좌관이 되었다. 1999년 3월부터 2000년 5월 제11대 한국씨름연맹 총재를 역임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 고문과 새천년민주당 체육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자로 대구 달성군 지역구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2000년 6월 대한민국ROTC중앙회 9대 회장에 선출됐다. 이후 대구 현풍초교 총동창회 회장, 재경 대구경북도민회 회장, 달성군 장애자후원회 회장, 한국정책개발연구소 이사장, 대한체육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또한 일본 동해 대학, 와세다 대학 객원교수로도 초빙되었다.

생애 후반

2002년 한국씨름연맹 총재에서 물러났다. 민주당 부총재와 대구시지부장을 역임했다. 2002년 2월에는 다시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에 재선출되어 2005년 10월까지 연임했다. 2002년 11월 민주당을 탈당했다. 2004년 12월 콩고 대통령 특사이자 겸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되었다.

2005년 6월 24일 대구지검 특수부(정상환 부장검사)로부터 선거법 위반자에게 사면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8,00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20] 그는 2002년 12월께 대구 수성구 모 호텔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모 신협 전 이사장 김모씨로부터 사면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고 2003년 5월에도 3,000만원을 받은 혐의다.[20]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가 2005년 9월 다시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이 되었다.

2006년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되었다. 2002년 8월께 서울 시내 모 호텔 커피숍에서 김모씨로부터 "사면을 받아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구 시내 모텔 등에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8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06년 기소됐다.[21] 2006년 11월 9일 대법원 1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정치권에 사면을 청탁해주는 등의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로 기소된 엄삼탁 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1]

2008년 2월 22일 서울아산병원에서[22] 당뇨병으로 사망했다.[3] 묘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다.

학력

저서

  • 《21세기 한국의 도약과 과제》(선일, 1993년 2월 1일)
  • 《이제 나라를 생각할 때다》(서울 : 조직혁신연구소, 1999년 1월 4일)

논란과 의혹

남북고위급 회담 훈령 조작 의혹

1993년 12월 2일 감사원은 남북고위급 회담 당시 직원본부장이었던 엄삼탁씨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감사원은 이날 엄삼탁이 입원중인 여의도성모병원에 감사요원 2명을 보내 엄 씨에 대해 고위급회담 당시 서울과 평양의 연락 사항 전반에 걸쳐 조사했다.[23]

토지 경매 개입 의혹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있을 때 경납받은 땅을 찾아준 해결사 역할도 해왔다 한다.[24] 억울하게 땅을 빼앗겼다는 윤 씨에게 해결사로 엄삼탁을 소개해 준 사람은 바로 슬롯머신 업자였다.[24]

서울 목동에서 내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윤향빈 씨는 이 업자를 통해서 자신의 땅을 되찾게 해준 대가로 3억 원의 거액을 엄 씨에게 주었다 한다.[24]

인물평

업무추진력이 강하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이 있다.[11] 익명의 한 안기부 직원은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거한인 그의 호방한 운동선수·군인기질은 대외활동에 있어 폭넓은 교제의 밑거름이 됐지만 이 과정에서 옥석을 가리자 않는 대인접촉 스타일은 「청탁을 거절 못하는 사람」이란 소문으로 잦은 물의의 발단이 됐다'고 평하였다.[3]

수상 경력

가족 관계

  • 부인 : 정용자(1941년 ~ )
    • 아들 : 엄건태(개인사업)
    • 아들 : 엄연태(기업인, 주 미드윈터 대표)

역대 선거 결과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98년 4.2 재보선 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군 새정치국민회의 20,563표
38.66%
2위 낙선
2000년 총선 16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군 새천년민주당 23,774표
38.60%
2위 낙선

관련 항목

외부 링크

각주

  1. 6공 실세 ‘엄삼탁’은 누구? 보관됨 2016-03-04 - 웨이백 머신2013.04.25《시사저널》
  2. '전통 자랑' 지역 초교 졸업식 2題-대구현풍초교 100회 졸업…동문들과 함께 축하 한마당 매일신문 2012.02.20.
  3. 노태우 前대통령 시절 ‘실세’ 엄삼탁씨 별세 경향신문 2008.02.23.
  4. [부고] 엄삼탁 전 씨름연맹 총재 별세 서울신문 2008.02.23.
  5. 노태우씨 부관 출신의 「9·9인맥」/엄삼탁병무청장 누구인가 중앙일보 1993.05.18.
  6. “폭력조직 비호” 끊임없는 잡음/1억수뢰 엄삼탁씨는 누구인가 국민일보 1993.05.18.
  7. 엄삼탁병무청장은 어떤 사람인가 한국경제 1993.05.18.
  8. 체육회, 理事 3명 보선 매일경제 1987.02.18. 12면 스포츠면
  9. 본부임원 조선일보 1988.09.01. 23면 스포츠면
  10. 감동의 人間 승리... 꼴찌에 더 뜨거운 박수 동아일보 1988.10.17. 13면 스포츠면
  11. 嚴三鐸 병무청장「9.9인맥」安企部서 YS 지지 경향신문 1993.03.05. 6면 정치면
  12. 6공 실세 ‘엄삼탁’은 누구? 시사저널 2013.04.24.
  13. 嚴三鐸 병무청장 매일경제 1993.03.04. 4면 정치면
  14. 신임 병무청장 嚴三鐸씨 씨름협회장등 직책 사임 동아일보 1993.03.05. 19면 스포츠
  15. 엄삼탁씨 부회장등 사임 한겨레 1993.03.05. 11면 스포츠
  16. 전 병무청장 엄삼탁 씨 징역 4년 구형 KBS뉴스 1993.07.02.
  17. 슬롯머신 수뢰 혐의 엄삼탁씨 석방 KBS뉴스 1994.04.27.
  18. 사람 사람 사람들 동아일보 1995.01.12. 21면 사회면
  19. 국민회의는 「작은 안기부」…해직간부들 줄줄이 입당 동아일보 1997.10.31.
  20. 뉴스 브리핑/ 엄삼탁 생체험 회장 알선수재 혐의 영장 한국일보 2005.06.24.
  21. '사면청탁' 엄삼탁씨 유죄 확정 매일신문 2006.11.10.
  22. [부고] 엄삼탁 전 씨름연맹 총재 별세 서울신문 2008.02.23.
  23. 훈령조작 의혹사건 엄삼탁씨 조사 KBS뉴스 1993.12.02.
  24.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28657 엄상탁씨 땅 경매도 관여] KBS뉴스 1993.05.18.
  25. 제26회 体育賞 시상식 매일경제 1988.12.22. 16면 스포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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