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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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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이동수
출생1962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1]
사망1986년 5월 20일[2]
대한민국 서울특별시[2]
사인자착(分身) 및 추락으로 인한 손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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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대한민국
시민권대한민국
학력서울대학교 (재학)[3]
직업학생 운동가
활동 기간1983–1986
병역대한민국 육군 병 (1983년 4월 입대–1985년 10월 전역)[1]
이동수
한글 표기: 이동수
개정 로마자 표기: I Dong-su
공식 로마자 표기: Lee Dong-su

이동수(1962년 ~ 1986년 5월 20일)는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자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의 희생자이다.[4] 1986년 5월 20일 서울대학교 오월제 행사 중 문익환의 강연이 진행되던 시각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4층 옥상에서 반권위·반미 구호를 외치며 분신한 뒤 추락하여 사망하였다.[2][5] 그는 생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노예가 된다”라는 문장을 신념으로 기록했다.[3]

생애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1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였다. 3수 끝에 1983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원예학과에 편입·입학하였다.[1][4] 1983년 4월 현역으로 입대하여 복무했고 1985년 10월 만기 전역하였다.[1] 복학 이후 유인물 배포 등 권위주의적 관행에 반대하는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군 복무 중에는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총선 과정에서 여당 편향 투표 강요를 묵과하지 않았다고 회고되었다.[3]

사상과 신념

그는 체제 순응과 거짓에 반대하는 단호한 언어를 유서와 편지에 남겼다. 특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노예가 된다”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기록했고,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네 눈에는 피눈물 흐르리라”와 같은 표현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했다.[3][1] 이는 집단 조직에의 소속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의 양심에 따른 저항이라는 주변 평가로 이어졌다.[5]

경력

  • 1981년 : 경기고등학교 졸업[1]
  • 1981년 : 숭실대학교 입학[1]
  • 1983년 :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원예학과 편입·입학(83학번)[4]
  • 1983년 4월 – 1985년 10월 : 대한민국 육군 병 복무(만기 전역)[1]
  • 1985년 – 1986년 : 서울대학교 재학 중 반권위 유인물 배포 등 학내 활동[3]
  • 1986년 5월 20일 :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후 추락 사망[2]

주요 활동

복학 이후 그는 학생 사회에서 권위주의 관행과 ‘어용’ 구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였고, 반권위적·반미적 구호를 공개적으로 외쳤다.[5] 1986년 봄에는 같은 서울대 학생 김세진·이재호의 분신(4월 28일)으로 표상된 강경한 억압과 검열, 고문에 대한 분노가 대학가 전반에 누적된 가운데 학내 집회와 토론에 참여했다.[6]

1986년 5월 20일 사건

1986년 5월 20일 오후 3시경 서울대 오월제 행사 중,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 선 그는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폭력경찰 물러가라”, “미제국주의 물러가라”, “어용교수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단을 살포한 뒤 자신에게 인화물을 붓고 불을 붙였다.[5][1] 그는 화염에 휩싸인 채 건물 아래로 추락했고, 당시 교내에는 약 3천 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으며 1천 명가량의 전투경찰이 진압을 위해 배치되어 있었다.[2] 현장 학생들은 분노와 혼란 속에 최루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충돌을 이어갔다.[2] 이동수는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같은 날 오후 4시경 사망하였다.[1]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는 그가 옥상에서 “경찰은 물러가라!”, “미 제국주의!”를 외친 뒤 점화하고 뛰어내렸다고 기록한다.[2] 이튿날의 후속 보도 또한 약 3천 명이 모인 행사에서의 분신과 추락, 이후의 충돌을 확인하였다.[7]

사후와 영향

사건 직후 대학가는 대규모 추모와 시위로 이어졌다. 서울대학교는 1986년 5월 30일 김세진·이재호와 이동수의 합동 장례를 학교에서 거행하였다.[8] 이동수의 분신은 5월 말 서울대의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 개최 등 학내 투쟁의 촉발점으로 작동하였으며 최예용과 같은 동시대인의 사유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9] 사건 다음 날 이동수의 죽음을 목격한 학생 박혜정은 한강에 투신하여 사망했고,[3] 문익환은 ‘분신을 멈추라’는 공개 호소문을 발표한 뒤 당국에 의해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10] 같은 해 6월, 검찰은 문익환을 관련 사건으로 기소했다.[11]

의료적 맥락

이송 병원인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은 1986년 3월 국내 최초의 화상 전문 치료기관(화상센터)을 개소하였다. 해당 센터는 이후 보건복지부 ‘화상전문 응급의료센터’로 지정(2006)되는 등 제도화를 거쳤으며, 1986–2003년 동안 1만 9천여 명의 급성 화상 환자를 치료한 국내 최대 화상 센터로 보고되었다.[12]

평가

이동수는 조직화된 운동권 외부에서 개인의 양심에 따른 비순응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된다.[5] 그의 분신은 1986년 봄 대학가의 저항을 재점화하는 계기로 작용했고,[9]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르는 민주화 열기의 축적 과정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회고된다.[6] 2022년 서울대학교는 이동수 등 민주화운동 희생자 7인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하여 기여를 기렸다.[3]

유서와 발언

그는 과대표에게 전달한 편지와 자작시, 동료에게 건넨 유서에서 체제 순응과 거짓을 거부하는 태도를 표명하였다. 대표적 문장인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노예가 된다”는 유서 구절은 이후 학내 추모 공간과 기록물에서 반복 인용되었다.[3][5]

논란과 쟁점

사건 직후 경찰은 배후를 추적하며 문익환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고, 이후 법원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그를 구속하는 등 정치적 논란이 이어졌다.[10][11] 이동수의 사망 경위 자체에 대해선 주요 기록과 목격 증언이 일치하며, 사건 장소·시각·현장 구호·이송 도중 사망 등이 다수의 1차 자료에 의해 확인된다.[2][5][1]

기억과 기념

서울대학교는 두레문화관 앞 ‘민주주의의 길’에 이동수 등 희생자의 추모 표식을 설치하여 구성원의 기억을 환기하고 있다.[3] 학내 언론과 기억 아카이브는 사건 사진, 유서 전문, 경과 보고를 수집·공개하여 1980년대 ‘항거의 분신’ 연쇄의 결정적 장면으로 기록하고 있다.[4][8]

연표

연표 (펼치기)
연도 사건 출처
1962 서울특별시 출생 [1]
[2]
1981 경기고등학교 졸업 [3]
1981-03 숭실대학교 입학 [4]
1983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원예학과 편입·입학(83학번) [5]
[6]
1983-04 현역 입대(대한민국 육군) [7]
1985-10 만기 전역 [8]
1986-03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 개소(국내 최초) [9]
1986-04-28 김세진·이재호의 분신 사건 발생(서울대) [10]
1986-05-20 15:00경 서울대 오월제 행사 중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후 추락 [11]
[12]
1986-05-20 16:00경 한강성심병원 이송 중 사망 [13]
1986-05-21 목격 당일 다음 날 박혜정 학생 자살 [14]
1986-05-21 이후 문익환의 ‘분신 중단’ 호소 및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15]
1986-05-30 서울대에서 김세진·이재호·이동수 합동 장례 [16]
[17]
2006 한강성심병원 화상전문 응급의료센터 지정 [18]
2022-08-29 서울대, 민주화운동 희생자 7인(이동수 포함)에 명예졸업증서 수여 [19]

각주

  1. “이동수(당시 24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2. “Korean Student Sets Self Afire, Leaps to Death” (영어). 《Los Angeles Times》. 1986년 5월 20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3. “Commemorating the Reformers: Honorary Diplomas Given to Seven Pro-democracy Activists” (영어). 《Seoul National University》. 2022년 10월 24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4. “이동수(서울대생) 분신사망사건”. 《김세진·이재호 기억저장소》.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5. “민주화열사 7인에 명예졸업증서 수여”. 《서울대학교》. 2022년 8월 22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6. “Self-immolation by two Korean dissident students” (영어). 《United Press International》. 1986년 4월 28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7. “Youth Sets Self Afire at Seoul School Protest” (영어). 《Los Angeles Times》. 1986년 5월 21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8. “자주, 평화, 통일을 부르짖은 이재호 열사를 기억하다”. 《서울대저널》. 2016년 6월 10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9. “서울대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 개최”. 《김세진·이재호 기억저장소》.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10.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 1986년 연표 요지”. 《통일의 집》.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11. “Foreign News Briefs” (영어). 《United Press International》. 1986년 6월 19일.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 
  12. “18-year experience from Hallym Burn Center in Seoul, Korea” (영어). 《PubMed》. 2005년 5월. 2025년 10월 3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