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폭탄주
폭탄주(爆彈酒, bomb shot)는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의 한국어 명칭이다. 근래에 제조법이 다양해지면서 섞는 비율이나 방법, 주종에 따라 수소폭탄주, 회오리주, 소백산맥주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최근에 맥주와 소주를 섞은 소맥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위스키와 맥주로 만든 폭탄주는 '양폭'(양주폭탄주), 소주와 맥주와 만든 폭탄주는 '소폭'(소주폭탄주)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2]
술을 섞어먹는 것이 유행하면서 과거에 안 좋은 이미지의 폭탄주 대신에 '혼합주'나 '섞음주'로 부르자는 시도도 있었다.[3][4] 재미와 맛을 찾고자하는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한국고유의 술 문화로 발전하면서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한국문화가 되었다.[5] 한편, 최근 폭탄주 문화는 재미와 맛이 아니라 싼 값에 쉽게 취하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다.[6]
역사
폭탄주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에도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먹은 기록이 있다. 1934년 동아일보에서 연재한 현진건의 소설 《적도》 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어젯밤 명월관 본점에서 맥주에다가 위스키를 타 먹은 탓인지, 눈을 뜨자 마자 타는듯한 갈증을 느끼었다."[7] 명월관처럼 부유층이 모이는 요리옥에서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마시는 문화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이미 값싼 일본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었고, 서구권에서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보일러메이커를 일본 호텔이나 고급 바에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 부유층에서 위스키를 즐겼던 일은 자연스러워 보인다.[8]
폭탄주라는 명칭이 대한민국에서 대중에게 알려지며 정착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1983년 춘천지검장으로 일하던 박희태 검사장이 당시 지역 기관장들의 술모임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군사정부 시절 군 인사들이 주도하는 술자리는 맥주 잔에 위스키를 가득채워 마실 만큼 음주문화가 과해 참석자들이 몹시 힘들어 했는데, 이에 박희태가 위스키와 맥주를 반반 섞어서 "화합주"라며 권했다는 설이다.[9]
군을 비롯하여 법조계, 언론 등 특정집단에서 유행하던 폭탄주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중에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1986년 12월 23일 동아일보 <연말과 퇴폐풍조>라는 기사에는 "폭탄주 돌리기 등 난폭한 음주습관이 유행되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10] 90년대에 들어서 주량의 척도로 소주 대신에 폭탄주를 사용할 정도로 유행하였다.[11] 폭탄주 문화가 대중으로 퍼지면서 제조법도 다양해졌다. 이미 1987년 동아일보에서 연재한 소설 《물의나라》에는 "양주 맥주 할 것 없이 가져오라 해서 원자폭탄주 수소폭탄주 열나게 돌리고 밴드 불러 노래 시들어지게 부르고.." 라는 대목이 있는데, 1980년대 중반 이미 위스키와 맥주의 비율에 따라 여러가지 폭탄주의 명칭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12]
대중에게 폭탄주가 유행하면서 제조법도 다양해졌다. 현재 대세로 자리잡은 소맥은 1988년 전두환의 언론통폐합에서 유래하였는데, 언론통폐합으로 해고당한 기자가 "언론도 통폐합되는 마당에 소주와 맥주도 통폐합시키자"고 하여 소맥의 기원이 되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양주를 사용한 양폭을 밀어내고 폭탄주의 대세로 자리잡는데에는 2004년 시행된 법인카드로 50만원 이상 접대시 참석자의 이름과 소속 등을 제출하도록 한 '접대비 실명제'가 큰 계기가 되었다.[13] 또한 2000년대 출시한 백세주가, 백세주와 소주를 반반 섞어마시는 오십세주로 크게 유행한 것도, 소폭이 양폭을 밀어내고 다양한 주종을 배합하는 폭탄주가 생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술을 즐겁게 마시기 위한 재미있는 폭탄주 제조가 음주문화의 하나로 자리를 잡으면서, 주류업체에서는 자사의 술판매를 목적으로 다양한 폭탄주를 개발해서 홍보하기도 한다.[3]
폭탄주와 관련된 역사
일제시대에서 군사독재를 거치며 한국에 자리잡은 군대식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대한민국 조직에 만연하였는데, 이런 강압적 조직문화는 군을 비롯하여 법, 정치, 언론 등 엘리트 그룹에서의 음주문화와 결합하여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상사가 만들어준 폭탄주를 거절하지 않고 비우는 것을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에서 벌어진 웃지못할 사건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일부분이다.[14] 이런 인식을 바꾸고자 폭탄주를 배척하는 사회운동이 있기도 했다.[15]
- 1986년 3월 21일 소위 "국회 국방위 사건"이 일어났다. 제129회 임시국회 개회를 마친 국회 국방위 소속의 여야 의원 10여명과 육군 수뇌부 8명이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의 요정 "회림"에 모여 폭탄주를 마시다가 여기 모인 장성들을 국회의원들이 "똥별" 취급하면서 싸움이 붙었다. 흥분한 남재희 의원이 벽에 던진 컵이 깨지면서 이대희 소장의 눈두덩이에 유리파편이 박혔고, 이에 흥분한 이대희 소장이 이단옆차기로 남재희 의원의 안면을 가격하여 기절하면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국방부장관과 참모총장이 공식으로 사과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서 소개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폭탄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16]
- 1995년 서석재 당시 총무처장관은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시중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에 대한 소문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결국 이것은 박계동 의원의 비자금 폭로로 이어졌다.[17]
- 1999년 6월 7일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폭탄주를 곁들인 점심 식사 이후 술에 취한 채 기자들에게 "(1998년의) 조폐공사 파업은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사실 검찰이 유도한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결국 이로 인해서 진형구 부장은 기소되었고 김태정 당시 법무부 장관까지 해임되었다.[18][19]
- 2005년 4월 16일 인천대공원 벚꽃축제 개막식 후 안상수 인천시장의 제안으로 가진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받아마신 한나라당 인천시의회 신경철 의원과 최병덕 의원 간에 "존칭"을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고, 상을 뒤집고 맥주병을 던지는 등 난투극으로 발전했다. 분을 참지 못한 신 의원은 그날밤에 최 의원 자택을 찾아가 흉기로 찔러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20][21]
- 2022년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은 검사시절부터 애주가로 유명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도 폭음은 계속 되었는데, 소주와 맥주를 가득 실은 1톤 화물 탑차가 매주 대통령실로 배달을 갔고, 참석자만 바뀌는 술자리가 매일 벌어졌는데, 윤석열은 한 자리에서 소주와 맥주를 반씩 섞은 폭탄주를 20잔씩 마셨다고 한다. 숙취 때문에 출근이 어려울때는 빈 관용차만 보내는 이른바 '가짜 출근쇼'를 벌이기도 했다.[22][23][24]
- 2025년 대한민국 경주에서 열리는 APEC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접견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젠슨 황은 접견에 앞서,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과 기술협력을 위해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과 소위 깐부치킨회동을 가졌다. '한국의 치맥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며 이 만남을 제안한 젠슨 황은 테라와 참이슬을 섞어만든 소맥의 일종인 테슬라주를 마시며, 이재용과 정의선과 러브샷을 하기도 하여 주목을 끌었다.[25] 과거에 부정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폭탄주 문화가 즐기면서 술을 마시는 음주문화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 사례로 꼽는다.[13]
대중문화에서 등장하는 폭탄주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맥주에 위스키잔을 떨어뜨려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는 국문학 박사 출신의 주인공이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룸사롱에서 학장에게 폭탄주를 접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 박찬욱 감독의 2025년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주인공 유만수(이병헌 역)는 9년동안 술을 끊어왔지만, 최선출(박희순 역)이 만들어준 폭탄주를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수없이 마신다. 유만수가 마신 폭탄주는 유만수가 각성하여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26]
종류
같이 보기
각주
- ↑ “‘양폭’ 쇠퇴…‘소폭’이 대세 작년에 소주 34억병 팔렸다”. 문화일보. 2014년 1월 10일. 2025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20대 성인 33%, 폭탄주 선호...97% 소폭, 18.1% 양폭”. 데일리메디팜. 2012.12.09. 2025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가 나 함봉균 기자 (2003년 7월 26일). “주당 주머니사정 '혼합주'로 해결”. 2025년 10월 11일에 확인함.
- ↑ 노유정 (2022년 1월 19일). “폭탄주는 가라…'섞음주' 술판을 뒤집다”. 2025년 10월 11일에 확인함.
- ↑ 한민선 (2022년 1월 28일). “'폭탄주·회식' K-음주 문화도 한류 대열에..한국의 흥 3가지는?” (Korean). 2025년 10월 11일에 확인함.
- ↑ 이데일리 (2017년 4월 8일). “[소맥이 궁금해]②주머니 사정 따라가는 폭탄주”. 2025년 10월 11일에 확인함.
- ↑ 현진건 (1934년 1월 16일). “赤道(적도) (22)”. 동아일보.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이대형 (2025년 10월 18일). “보일러메이커에서 소맥까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폭탄주의 역사”. 소믈리에타임즈.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토요판 커버스토리]대한민국 폭탄주 30년”. 2013년 10월 19일. 2025년 10월 11일에 확인함.
- ↑ “年末(연말)과「퇴폐풍조」”. 동아일보. 1986년 12월 23일.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이상욱 자유기고가 (2000년 12월 30일). “한국사회 울리고 웃긴 폭탄주에 얽힌 전설들”. 월간중앙. 2025년 10월 11일에 확인함.
- ↑ 박범신 (1987년 12월 26일). “물의나라 <95>”. 동아일보.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가 나 “[천자칼럼] 젠슨 황의 '소폭'”. 한국경제신문. 2025년 10월 31일. 2025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군(軍)과 폭탄주”. 동아일보. 2013년 6월 12일.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폭탄주 사건은 언제 시작되었나 - 한겨레21 제557호
- ↑ 정사(正史)가 되어 버린 국방위 회식 사건
- ↑ 장원준의 이슈 빨간 펜-폭탄주에 관한 5 가지 오해 보관됨 2010-10-24 - 웨이백 머신 - 2005년 9월 30일 조선일보
- ↑ “대낮 폭탄주와 파업 유도 失言의 顚末 - 6월7일 낮 1시30분, 대검 수뇌부는 만취중”. 월간조선.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오래 전 '이날']6월10일 폭탄주가 부른 폭탄발언 파문”. 경향신문.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한나라당, 인천 무림활극!”. 한겨례21. 2005년 5월 3일. 2025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보관된 사본”. 2005년 4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2월 23일에 확인함.
- ↑ 기자, 최현목 월간중앙 (2025년 8월 19일). ““김건희는 신성불가침, 직언(直言)하면 그대로 ‘모가지’” - 월간중앙”. 《월간중앙》. 2025년 10월 12일에 확인함.
- ↑ 정환봉,고한솔 (2024년 12월 11일). “[단독] 경찰들 “윤석열 ‘가짜 출근’ 쇼…이미 다 아는 사실” [영상]”. 2025년 10월 12일에 확인함.
- ↑ 기자, 박세열 (2025년 8월 22일). “"윤석열, 매일 폭탄주…소주·맥주 가득 실은 1톤 탑차, 매주 대통령실로 배달 다녀"”. 2025년 10월 12일에 확인함.
- ↑ “'AI 깐부 회동'에 하이트진로·빙그레가 웃는 까닭은”. 한국일보. 2025년 10월 31일. 2025년 11월 21일에 확인함.
- ↑ “'어쩔수가없다' 300만 가자! N차 관람유발 명장면은 바로 이것!”. 2025년 10월 29일. 2025년 11월 29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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