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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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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역사는 19세기 오늘날 '싱가포르'의 수립 이후와 그 이전 역사로 구별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14세기부터 싱가포르는 국제 무역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싱가포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싱가푸라 왕국이 13세기 말부터 약 100년 간 싱가포르를 지배했고, 뒤이어 이슬람 국가였던 믈라카 술탄국조호르 술탄국이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인도 제국 예하 행정구역이었던 벤클룬 주재관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가 1819년 조호르 술탄국 술탄과 협상을 하여 싱가포르를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고, 1826년 싱가포르는 페낭믈라카와 함께 해협 식민지가 되었다. 1830년부터 1867년까지 해협 식민지는 인도 제국의 행정 구역에 속해 있었고, 1863년 싱가포르는 영국의 왕령 식민지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5년 싱가포르에서 폭동이 발생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이 시기 싱가포르는 영국 해군의 해군 기지 역할을 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싱가포르는 영국 해군과 영국 공군 기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1942년 태평양 전쟁 중 싱가포르는 일본 제국 육군과 해군의 합동 공격에 함락되었다. 함락 직후 일본군은 싱가포르에서 중국계를 비롯한 반일 싱가포르인을 학살하였다. 이후 3년 간 싱가포르는 쇼난도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마라야의 사실상 행정 수도 역할을 하였고, 일본 제국의 병참 기지로 활용되었다.

1945년 9월 일본의 항복 이후 싱가포르는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1955년 자치를 부여받은 싱가포르는 1959년 싱가포르주로 승격되었고, 1963년 말레이시아에 편입되었다. 1964년 싱가포르 인종 폭동 이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7일 싱가포르 독립에 합의하였다.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9일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이후 싱가포르는 불황과 인종 갈등을 극복하고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부상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유엔 등 주요 국제 기구에 참여하며 지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식민 지배 전의 역사

싱가포르에 관련된 역사 기술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의 중국 문헌으로, 풀라우 우종(말레이어: Pulau Ujong, '(말레이 반도) 끝에 있는 섬'이라는 뜻)을 한자로 음역한 포라중(蒲羅中: Pu Luo Chung)으로 나온다.[1][2] 7세기 이후 스리위자야 제국에 속하며 자바어로 "바다 마을"이라는 뜻의 어촌 "트마섹"(Temasek, Tumasek)이라 불리었다.[3] 복수의 항로가 합류하는 말레이반도의 끝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이 더해져 다양한 나라의 선박이 기항하는 등, 트마섹은 중요한 무역도시로 떠올랐으나, 이후 14세기 경에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16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싱가포르는 조호르 술탄국의 일부였다. 1617년 말레이시아-포르투갈 전쟁 중에 포르투갈 군대가 싱가포르를 불태운 이후, 16세기 동안에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며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그저 어민과 가끔씩 해적들이 나타나는 지역이였다.

식민 지배 후의 역사

파일:Stamford Raffles statue.jpg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의 상

1819년 영국 동인도회사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이 지역에 상륙하여 조호르의 술탄과 계약을 맺고, 싱가포르를 국제 무역항으로 개발하였으며, 이때부터 크게 성장하였다. 영국의 인도 정부가 1858년부터 이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1867년부터는 정식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869년까지 싱가포르의 인구는 100,000명에 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 군대가 말레이시아를 침공(싱가포르 전투)하여 점령하였다. 6일간 영국군은 치열한 방어를 하였으나, 1942년 2월 15일 항복을 한다. 일본은 싱가포르를 쇼난(昭南)으로 개명하고 1945년 9월 12일 일본이 항복한 후 영국군이 탈환할 때까지 지배했다.

싱가포르의 독립

파일:Prime Minister Lee Kuan Yew of Singapore Making a Toast at a State Dinner Held in His Honor, 1975.jpg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

1959년리콴유(Lee Kuan Yew) 수상과 유솝 빈 이스학(Yusof bin Ishak)에 의해 자치주가 되었으며,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이 중국계인 싱가포르와 인구의 대부분이 말레이인인 말레이시아와의 마찰로 2년 후 독립하게 되고, 1965년 8월 9일 독립 국가로서 새로운 국가를 시작하였다. 리콴유가 초대 총리로 집권하였다.

새로운 국가로서 싱가포르는 당면한 실업과 자급자족의 문제가 심각했다. 그러나 1959년 6월 5일부터 1990년 11월 28일까지 리콴유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 홍콩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리콴유 내각 주도의 경제 사회 정책과 관련된 집행들은 공산주의보다 더 강하고 완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 11월 28일고촉통(Goh Chok Tong)이 총리직을 이양받았으며, 2004년 8월 12일에는 리콴유의 맏아들인 리셴룽(Lee Hsien Loong)이 2006년 5월 6일2011년 5월 7일2015년 9월 11일에 실시하는 싱가포르 총선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3, 4, 5, 6대 총리로 다시 임명이 되면서 현재까지 내각을 이끌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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